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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탐사: 영화로 보는 부산의 공간

파도 넘실대는 바다가 있는 곳, 송정 해수욕장

  • 글 ·
  • 작성일2020. 12. 14

 

김형곤 동명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인생은 파도와 같다. 어떤 때는 한없이 위로 솟구쳤다가, 어떤 때는 한없이 아래로 푹 가라앉는다. 잔잔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아닥치기도 한다. 인생에는 아주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도 어두워서 다시 기억하기 싫은 순간들도 있다. 그런데 이런 순간들은 한없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처럼 영원히 빛나기만 하지도 않고, 영원히 어둡지만도 않은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오르락 내리락, 어둡고 빛나는 순간들이 교차해 가면서 들이닥치는 파도가 참 인생과 닮았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끊임없이 닥쳐오는 삶의 순간들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이런 때는 용납되지 않는다. 하나의 파도가 지나가면 반드시 또 다른 새로운 파도가 몰려오듯, 오늘이 지나가면 반드시 내일이 온다. 인생은 단 한순간도 우리에게서 비켜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파도를 몰고 오는 바다처럼 늘 새로운 순간들을 맞이하게 한다. 가수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 노래의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는 가사처럼, 내일은 죽어도 오고, 그 내일은 어떨지를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살다 보면 어떤 때는 평상시와 다르게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랄 때가 있다. 예컨대 나에게는 군대에서의 시간이 그런 경우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조금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가게 됐는데, 3년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는 순간 그 시간들이 ‘순삭’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어떤 순간은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만남을 가지는 순간에는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바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시간은 되려 평소보다 더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파도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나씩 하나씩 다가오는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순간들은 정해진 시간을 지키면서 차례대로 지나간다.

 

<소울 서퍼Soul Surfer>(2011)

 

바다 위 파도를 타면서 미끄러지듯 질주하는 사람을 서퍼라고 한다. 2011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소울 서퍼>는 서핑을 좋아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살 때 하와이 바다에서 서핑을 하다가 상어에게 습격당해 한쪽 팔을 잃고서도 서퍼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도전하는 베서니 해밀턴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어떠한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와이 카우아이에서 태어난 베서니는 서핑을 즐기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서핑을 즐겼고, 프로서퍼가 되는 게 꿈이었다. 13살이 되던 해 하와이주 서핑대회에 출전한 베서니는 1위로 예선을 통과한다. 결선을 준비하며 집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친구와 함께 서핑을 하러 갔다가 상어의 공격으로 한쪽 팔을 잃는 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베서니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서핑을 시작하고, 한쪽 팔만으로도 서핑대회에 출전해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된다.

 

 

한쪽 팔을 잃고 난 후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영화의 주인공 베서니는 이런 말을 한다. “인생도 서핑과 같다고 배웠다.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 빠지면 바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 파도 너머 무엇이 올지 절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무엇이든지...” 서핑을 하다 보면 파도에 휩쓸려 수면 아래로 푹 가라앉을 때도 있지만, 서핑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바로 다시 위로 올라와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때때로 예기치 않게 밑바닥으로 곤두박질할 때가 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바로 다시 올라올 수 있다. 지금의 파도 너머 또 다른 무엇이 올지 모르는 게 인생이지만, 무엇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볼 수 있다.

 

 

부산에서 서핑으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자면 단연 송정 해수욕장을 들 수 있다. 송정 해변은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싣고 즐기는 서퍼들에게는 꿈같은 곳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좋아하는 서핑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탓에 직장인들도 출근 전 새벽 시간대와 퇴근 후 석양이 질 무렵 선셋서핑을 즐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송정 해수욕장은 대도시의 일상과 서핑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국내의 유일한 곳이다. 또한 송정 해변은 질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 빈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도 윗부분이 하얀 거품을 내는 걸 서퍼들은 파도가 ‘부서졌다’고 표현한다. 별로 좋지 않은 파도인 것이다. 하얀 거품이 없는, 면이 살아 있는 파도가 ‘질이 좋은 파도’이다. 이 때문에 많은 서퍼들이 송정 해수욕장을 찾게 된다.

 

서퍼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여름에 남쪽에서 질 좋은 파도가 자주 올라온다고 한다. 그래서 여름에는 제주도가 서핑하기 좋다. 겨울에는 질 좋은 파도가 동쪽에서 자주 온다고 한다. 그래서 겨울에는 강원도 양양이나 경북 포항의 바다가 서핑하기 좋다. 그런데 송정은 남해와 동해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남쪽과 동쪽의 파도가 다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송정에서는 사계절 내내 질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다. 송정 해수욕장의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지역에 비해 수온이 높다는 것이다. 한 겨울에도 바다 수온이 12~13도 정도로 따뜻해서 사계절 내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송정 해수욕장에 가면 사계절 내내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송정 해수욕장은 해운대 해수욕장과 더불어 동부산을 대표하는 해수욕장이다. 매년 1월 1일 새해에는 해운대 해수욕장보다 조금 더 일찍 해를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해돋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송정 해수욕장에는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았다고 하며, 정식으로 해수욕장을 개장한 것은 1965년 7월 9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송정 해수욕장은 서핑의 명소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덕분에 수많은 서퍼들은 물론, 서핑 관련 교습소와 가게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나는 해마다 봄이 오면 연례적으로 송정 해수욕장에 간다. 꼭 봄마다 그곳을 들르는 이유가 있다. 봄에 신입생들이 입학하고 MT를 가게 되면, 거의 송정 해수욕장을 향한다. MT를 간 학생들이 잘 지내는지 둘러보고, 밥 한 끼 같이 하기 위해서 봄마다 송정 해수욕장에 갈 기회가 생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MT를 갈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송정 해수욕장은 부산 지역 대학생들에게 MT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하도 송정으로 MT를 자주 가서 지겹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3월 말, 4월 초 MT 시즌에 송정 일대의 민박 집, 펜션에는 대학생들로 넘쳐난다. 그들을 보면서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젊음을 느낀다.

 

대학생들이 MT를 가는 봄날의 송정 해수욕장은 물이 아직 차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T를 온 대학생들은 어김없이 물에 뛰어든다. 수영을 하거나 서핑을 하는 건 아니지만, 게임을 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바다로 뛰어든다. 바닷물에 옷이 다 젖고, 추위에 떨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성인이 되어가는 대학생들의 통과의례 같은 느낌이다. 이들은 바다에서 이제 성인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파도를 느낀다. 앞으로의 인생에 어떤 파도가 닥칠지 모르지만, 자신을 믿고 자신의 힘으로 이겨내리라고 다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파도가 넘실대는 송정바다에서 인생은 파도를 타는 서핑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형곤 동명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면서, 문화비평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잡지 <안녕, 광안리><다리 너머 영도> 등에서 문화에 관련된 글을 썼었다. 저서로는 <신세대론><한국전쟁의 사진과 기억><미디어와 문화> 등이 있다. hgki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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