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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영화: 영화로 보는 부산의 음식 ‘변호인’과 부산돼지국밥

‘변호인’과 부산돼지국밥

  • 글 ·
  • 작성일2020. 12. 14

 

<변호인>(2013)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2013년 개봉해 1,13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 <변호인>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창작된 변호사 송우석(송강호 분). 사건으로는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년 9월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도서 모임인 ‘부산양서협동조합’에 참여했던 학생과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없이 체포, 불법 감금과 고문 끝에 기소한 ‘부림사건’. 그리고 나머지 한 축은 인간 송우석의 삶의 변곡점마다 등장한 돼지국밥이다. 영화 <변호인>은 시대의 아픔을 담아낸 드라마다. 결코 음식이 주제가 아니다. 하지만 돼지국밥은 송우석의 삶과 부산의 정서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소재로써 기능한다.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은 다섯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고시생 송우석이 보수동 헌 책방에 수험서를 팔고 돼지국밥집을 찾았을 때다. 송우석의 근심 어린 표정까지 읽을 정도로 상대를 잘 아는 국밥집 아지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늘은 지난달 식대라도 좀 주고 가라”며 한마디 던진다. 그때 송우석의 수중에는 수험서를 팔고 받은 오백원짜리 지폐 몇 장이 쥐어져 있다. 그는 국밥집 아지매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도망친다. 돼지국밥 값조차 치를 형편이 못 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토악질을 한다. 송우석은 책방으로 달려가 “내 책 다시 주이소”라며 팔았던 수험서를 돌려받는다. 인생의 방향이 영원히 달라질 뻔했던 순간, 변호인을 다시 살려낸 이 돼지국밥은 ‘각성의 국밥’이다.

 

그로부터 7년이 흐른 후. 판사에서 변호사로 전업해 자리를 잡고, 집까지 장만해 화목한 가정을 이룬 송우석. 그는 가족과 함께 돼지국밥집을 찾아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7년이나 묵은 밥값을 청산한다. 국밥집 아지매는 “자고로 빚은 얼굴하고 발로 갚는 기다”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결국 송우석는 돈대신 자신의 인생을 걸고 밥값을 갚게 된다. 이 장면의 돼지국밥은 ‘베풂의 국밥’이다.

 

부동산 등기와 세무 관련 업무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변호사 송우석. 그는 얼굴로 빚을 갚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돼지국밥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매일 같은 메뉴에 동행한 사무장은 싫은 기색이 역력하지만 송우석은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 돼지국밥은 매일 먹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일상의 국밥’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동기회 회장으로 선출된 변호사 송우석. 이미 차수를 거듭한 그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이끌고 돼지국밥집을 찾는다. 아지매에게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모여주고 싶었고, 아지매는 그런 송우석을 기꺼이 맞아준다. 스스로 이뤄낸 성공과 안정에 도취되어 있던 송우석. 하지만 지역 일간지 기자인 친구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며 사는 송우석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둘의 다툼은 결국 몸싸움으로 끝이 난다. 이때 등장한 국밥은 ‘갈등의 국밥’이다.

 

부림사건으로 구속된 국밥집 아지매의 아들을 변호하게 된 변호사 송우석. 처음에는 인간적 도리로 시작한 변호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의 부조리에 눈 뜨고, 군사독재 정권의 폭력에 분노하게 된다. 결국 재판은 졌고 송우석은 절망한다. 바로 그 순간. 가장 힘들고 아파야할 국밥집 아지매가 언제나처럼 돼지국밥을 건넨다. “변호사님아, 니는 최선을 다했다 아이가. 이거라도 묵어야 내 맘이 안편하겠나”. 송우석은 분노와 슬픔을 누르며 국밥을 삼킨다. 그리고 다음 장면. 박종철 열사 추모집회 현장. “데모로 세상을 바꿔? 니미 뽕이다!”라고 말하던 변호사 송우석은 데모 군중의 맨 앞에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아왔던 변호사(士)에서 시대와 민중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들을 대변하는 변호인(人)으로, 그리고 독재에 저항하는 투사로 변해 있었다. 따라서 영화에 등장한 마지막 돼지국밥은 ‘거듭남의 국밥’이다. 

 

비단 송우석의 삶뿐만 아니다. 돼지국밥은 부산 시민의 희로애락과 함께해 온 음식이다. 송우석의 삶이 그러하듯 부산사람의 서사를 돼지국밥을 떼놓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하나의 음식이 지역에서 가지는 상징성과 대중성을 측정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그 음식이 가장 맛있는 음식점이 어디냐’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최고로 꼽히는 곳이 다양할수록, 의견이 분분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을수록 상징적 의미가 크다. 다음으로 음식 명칭 뒤에 ‘광(狂)’이나 ‘마니아’를 붙여본다. 이 조합이 자연스럽고, 광이나 마니아층이 두꺼울수록 대중성이 짙다.

 

어떤 매체에서 ‘이 집이 부산 최고의 돼지국밥’이라고 한다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침을 튀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화끈하고 호불호가 명확한 부산사람이지만 돼지국밥에 있어서만큼은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게다가 광이나 마니아 정도의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돼지국밥 애호가들은 “내 핏 속의 일부는 돼지 육수가 흐르고 있다”라는 과격한 표현을 쓸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돼지국밥은 부산에서 탄생한 음식은 아니다. 돼지국밥이 부산의 향토음식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돼지는 신석기시대부터 가축으로 길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돼지는 땅을 갈지도, 가축을 보호하지도, 알을 낳지도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키웠던 것은 돼지는 죽어서 존재감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에게 올리는 제사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민원을 접수하는 행위다. 부탁을 하는데 맨입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 제물이 필요했다. 생명이 있는 것을 받칠수록 인간의 절실한 의지가 전달된다고 믿었다. 화를 면하고 복을 부르는 제물로서 돼지만큼 적합한 동물도 없었다. 심지어 웃고 있는 머리를 올리니 신도 노여움을 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신에게 올리는 제사가 끝나면 인간의 축제가 시작됐다. 돼지의 결정적인 존재감은 이때 두각을 나타낸다. 신에게 제물로 돼지가 받쳐지는 날은 곧 인간이 고기를 먹는 날이다. 넓은 의미의 ‘고기’는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신체 조직 전부를 의미한다. 이를 좀 더 세분화하면 신체의 일부를 움직이는 데 사용되는 근조직인 좁은 의미의 고기와 간·콩팥·창자 등의 내장 기관으로 구분한다. 이때 고기는 근육, 다시 말해 동물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추진 장치다. 추진 장치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동물과 식물의 에너지원은 탄수화물과 단백질인데 지방은 같은 무게의 탄수화물에 비해 2배나 높은 칼로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에너지의 밀도가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움직임이 많은 동물은 지방의 형태로 에너지를 저장한다. 그래서 가축을 도축해서 고기를 얻는다 함은 추진 장치인 근육과 에너지원인 지방만 분리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한반도의 재래종 돼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인간이 먹을 것을 나누며 애써 키워봐야 60kg이 넘지 않았다. 여기서 얻어지는 고기는 겨우 30kg 남짓. 축제를 즐기고 배불리 먹기에 충분치 않은 양이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분배의 정의를 실현할 방법이 필요했다. 머리·뼈·내장 등을 모두 넣어 끓여서 국물을 얻고, 밥이나 면을 말고, 고기 몇 점을 올렸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축제다운, 잔치다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돼지국밥의 탄생이다.

 

공동체 중심의 농경사회에서는 이 정도로 충분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도래하고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공리주의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대량 사육의 핵심은 속도와 효율성. 버크셔, 랜드레이스, 듀록이라는 외래 품종을 섞어 삼원교잡종이라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었다. 재래종과 비교해 이 새로운 품종 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한 번에 새끼를 14~17마리까지 낳았다. 태어날 때 1.5kg이었던 것이 사료만 잘 먹이면 6개월 만에115~120kg까지 성장했다. 심지어 지방도 적어 훨씬 더 많은 비율의 고기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축제나 경조사가 아니라도 고기 맛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굳이 국밥을 끓이지 않고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돼지고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산사람들이 여전히 돼지국밥을 끊지 못하는 것은 ‘정(情)’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 그 힘겹고 지긋지긋한 세월을 거쳐오는 동안 돼지국밥은 언제나 특유의 누린내를 풍기며 허기를 채워줬다. 그렇게 돼지국밥으로 일상의 허기를 채우면서 부산사람들은 각성하고, 베풀고, 갈등하고 거듭난다.

 

혹시라도 여유가 되시면 돼지국밥을 중심에 두고 <변호인>을 다시 한 번 보시길 권한다.

 

 

박상현 <일본의 맛, 규슈를 먹다> 저자이자 부산 출신의 맛칼럼니스트다. 와인을 좋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블로거로 활동하다 여기까지 왔다. 많은 사람이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기 선택권을 가지고 음식을 고르는, 다양한 음식과 다양한 취향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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