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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필름 리뷰. 2017년 3월 2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누구의 것도 아닌 ‘블루’ <문라이트>]

  • 글 ·
  • 작성일2021. 01. 12


오늘을 살아가는 ‘나’란 존재는 더 이상 어제의 ‘나’일 수 없으며, 내일 도래하게 될 ‘나’를 곧 오늘의 ‘나’와 동일한 존재로 섣불리 치부할 순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세월이 되었든,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인연이나 크고 작은 성찰을 빚은 경험들이 되었든, 삶이라는 풍파는 동일한 이름하의 한 존재 가운데 각기 다른 여러 얼굴들을 새겨 넣기 일쑤다. 구태여 가면을 뒤집어쓰지 않더라도 제각각의 이질적인 얼굴들로 세상과 마주하게 될 무수한 ‘나’는 비록 동일한 뼈와 살을 지닌 인간일지언정 자신에게 부여된 여러 이름들과 직면할 수밖에 없다. 뭉뚱그려 삶이라 불리는 이러한 여러 이름들은 그 자체로 제각기 한 인간의 생애를 이루는 파편들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영화 <문라이트>에서 주인공 샤이론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민 마약상 후안은 자신을 ‘블루’라 불렀던 옛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빛에 비친 어린 시절의 제 얼굴이 푸른빛을 띠어 사뭇 낯선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겠노라 선언했던 할머니와의 추억. 또래 아이들로부터 본래 이름보다도 ‘리틀’이라는 놀림조의 별명으로 불리기 일쑤였던 샤이론은 후안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블루’라는 애칭이 당신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냐고. 후안은 그렇지 않다며, 인간은 자신이 누구며 무어라 불릴지 스스로 정해야만 하는 존재라 답한다.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후안의 자신만만한 단언과는 달리, <문라이트>에서 그려낸 샤이론의 인생행로는 자신의 미래를 향해 스스로 걸음을 내뻗는 주체적 여정에 가닿지 못한다.


마약거래로 피폐화된 80년대의 마이애미, 어머니마저 마약에 절어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이 고독한 나날 가운데 처한 소년은 폐쇄적이고 냉혹한 흑인 커뮤니티 내에서 자신의 남다른 성적정체성을 제대로 직시하기도 전에 그것을 스스로에게조차 숨기기에 급급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의 별명처럼 ‘리틀’이라는 부제가 달린 샤이론의 어린 시절은 제 존재에 대한 의식이 막 싹트기 시작할 무렵의 소년을 그리고 있다. 스스로 자신의 앞날을 개척해야만 한다고 역설했던 후안의 말과는 달리 뜻하지 않은 우연과 만남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애초 자신이 선택치 않았던 낯선 이름과 얼굴을 마치 상흔처럼 그의 존재에 각인시킨다.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는 주인공 샤이론의 일대기를 그려나감에 있어 구태여 그가 처한 계급적, 인종적 위상 혹은 성적 소수자로서의 처지를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흑인과 빈민, 동성애자라는 몇 가지 코드만으로 그를 규정짓는 것을 경계하고자 한 영화는 샤이론의 외겹을 이루는 여러 요인들에 대한 섣부른 선입견에서 벗어나, 그러한 요인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 ‘창조’된 한 인간의 얼굴에 주목할 것을 강변한다. ‘리틀’이라 불렸던 숫기 없고 내성적인 소년은 세월이 흘러 근육질 체구의 위협적인 마약상 ‘블랙’으로 변모했지만, 온전한 애정과 진실어린 관계의 온정으로부터 소외된 어린 시절의 외로움은 긴 세월을 지난 그의 거친 얼굴 가운데에도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에 이른 샤이론의 이질적인 외양에서, 동일한 존재의 자취를 드러내는 것은 어느덧 천형처럼 체화되어버린 그의 고독뿐이다.


고향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 케빈과 재회한 샤이론은 마약상으로서의 음침한 일상을 잠시 내려놓은 채 마치 유년기의 ‘리틀’로 되돌아간 듯 수줍은 모습이다. 청소년기의 은밀한 추억을 간직한 두 사람은 너무도 달라진 서로의 외양에서 지나온 시간의 두터운 무게를 새삼스레 체감한다. 비록 찬란하게 빛나는 추억의 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소년으로 되돌아간 샤이론은 자신의 존재를 지탱해온 그 순간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의 감정에 북받쳐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한 친구를 향해 자신을 짓눌러온 상실감을 토로한다. 고독과 슬픔, 분노와 처연함으로 점철된 말없는 얼굴의 샤이론은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지나온 세월의 고통을 소리 내어 고백하기에 이른다.


스스로 원하는 삶을 영위하기보다, 주어진 환경 가운데 강요된 삶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한 청년의 일대기는 비단 그가 속한 흑인 남성사회의 폭압적인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국한되지 않고, 획일적이며 천편일률적인 ‘어른’으로의 성장을 강요받는 숱한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던진다. ‘리틀’ 혹은 ‘샤이론’은 그저 ‘블랙’이라 일컫는 흑인남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배태한 성장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각자의 색채를 발하며 영롱하게 빛나는 눈부신 순간에 해당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제각기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어스름 무렵의 달빛에 의존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고귀함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우리에게 선언한다.

문성훈 제17회부산국제씁화제시민평론단/ 자유기고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으나, 전공과 하등 관련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는좋아하는 영화를 실컷 보러 다니며 무위도식, 앞으로 살아갈 바를 암중모색 중이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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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오늘따라 커피 맛이 쓴 이유 - 영화<노 임팩트 맨> 살아오면서 환경에 끼쳤을 엄청난 영향을 진지하게 반성해 본다.
뉴스, OST & 맛집. 2016년 12월 21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우울한 사랑과 실패할 열정] 김일두의 ‘문제없어요’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Hable Con Ella>를 들으며
뉴스, 웹툰. 2016년 11월 16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2 더 랍스터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2 더 랍스터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월 21일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2011)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2015년 영화부산 vol 15(통권 55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9월 24일 기쁨 권하는 사회 [인사이드 아웃] ‘기쁨’과 ‘슬픔’이 함께 포옹하는 장면, 우리 안의 페르소나와 쉐도우가 대면하는 장면일 것이다.
2014년 영화부산 vol 11(통권 51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10월 1일 Film Review – 이제 겨우 이야기의 시작 [고스트 메신저] 이 애니메이션은 영력을 가진 주인공 꼬마 ‘강림’이 영문 모를 장난감 하나를 떠맡게 되면서 시작한다.
2008 Summer (통권 26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6월 29일 크로싱 131일간의 간절한 약속, 8천km의 잔인한 엇갈림
리뷰, OST & 맛집. 2016년 12월 07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나 좀 고쳐주세요] 영화 <데몰리션 DEMOLITION>을 들으며
2006 Summer (통권 18),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6년 7월 4일 강적 조민호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오우삼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강적’ 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뉴스, 웹툰. 2016년 12월 13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4 신비한 동물사전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4 신비한 동물사전
2014년 영화부산 vol 09(통권 49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4월 4일 Film Review 질주가 아닌, 부유(浮游): [설국열차]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설국열차처럼 일거에 멈춰 세울 수 없는 무형의 거대 열차이기 때문이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8(통권 68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1월 15일 <너는 여기에 없었다> - 카운트다운의 끝은 어디를 향하는가 폭력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거꾸로 수를 세는 것뿐이란 슬픈 인식만은 뚜렷이 남는다.
칼럼, 정한석의 영화공원. 2018년 9월 21일 [정한석의 영화공원] 그럼 무엇이 있었나 _ <너는 여기에 없었다> *스포일러 있음
뉴스, OST & 맛집. 2016년 8월 3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어떤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춰야 하는 것처럼] 영화 <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을 들으며
2013년 영화부산 vol 04(통권 44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2월 4일 범죄소년 (범죄)소년, (범죄)소녀를 만나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4(통권 44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2월 4일 잊혀진 꿈의 동굴, 문성훈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소멸되지 않은 꿈의 역사 베르너 헤어조크 作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월 21일 [도둑들]을 중심으로 공간과 사람,차이와 무관심 영화〈도둑들〉이 홈친 것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11월 29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이야기 중의 이야기 <테일 오브 테일즈>]  ‘미’와 ‘추’란 대립적 개념이 환희와 비탄, 삶과 죽음의 역설적 공존만큼이나 미묘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제시한다.
필름리뷰 - 부산평론가 4인 영화 리뷰 차라리 시가 되자 박배일의 <사상>(2021)은 통 매끄럽지가 않다. 무시로 흔들리는 카메라,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필터 씌운 합성 이미지 등으로 여기저기가 생채기다. 온통 찢긴 흔적들로 처연한 모습이다. 간간이 들리는 괴기스런 음향도 상처 입은 자리에서 나는 신음 소리 같다. 마치 거론되는 현실 곧 자본과 공권력으로 파괴된 ‘사상(구)’ 공동체 마냥 모든 것이 중심 없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폐허의 형상, 다만 분산되고 흩어진 이미지 조각들만 서로를 간신히 붙들고 있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5(통권 65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4월 4일 무엇이 우리를 윤리로 이끄는가 <더 포스트> 하나의 숭고한 선택의 저변에는 어떤 사람이 있고, 어떤 희생이 있는가. 여전히 들여다봄직한 고민이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9(통권 69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6월 3일 경계선의 사람들 내가 돈과 토니의 웃음을 마냥 행복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2008 Winter (통권 24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1월 30일 사상 최악의 협상극 세븐데이즈 영화 <세븐 데이즈>를 필두로 한국 스릴러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한국영화장르의 주류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스릴러 매니아의 한 명으로써 손꼽아 기다려진다
2017년 영화부산 vol 20(통권 60호), 리뷰, FILM REVIEW. 2016년 12월 28일 겨울을 나는 방법 <러브레터> 영화를 본 이후 나의 쓸쓸하던 마음 역시 구원되었다.
2016년 영화부산 vol 16(통권 56호), 리뷰. 2016년 1월 4일 FILM REVIEW 단 한편의 시(詩) - 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목숨과 바꾼 미자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5(통권 55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9월 24일 천재에서 거장으로 [퍼시픽 림] 지금은 우리 모두 길예르모 델 토로의 새로운 세계를 그저 맘 편히 즐겼으면 한다. 어둡고 음울했던 시절의 괴이한 섬세함 대신, 이제는 다른 차원에서 상상력을 펼치는 사내의 세계를 말이다. 
2008 Winter (통권 24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1월 30일 지랄 같네… 사람 인연… [사랑]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장면이 없는 영화,〈사랑〉. 이제는 이 영화를 ‘사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18년 영화부산 vol 26(통권 66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7월 12일 ‘사라지고 싶다’와 ‘죽이고 싶다’, 청춘의 막막함 앞에서 <버닝>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감독 이창동의 8년만의 신작 <버닝>
2019년 영화부산 vol 28(통권 68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1월 15일 <풀잎들>, 죽음 또는 중심의 소멸 죽음과 중심이 소멸된 홍상수 생태계의 미래를 더 예측하는 것은 늘 그랬듯 불필요한 일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Film Review- 사랑이라는 치명적인 페이드아웃 [베티블루] 베티는 영원히 눈부신 스무 살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5(통권 45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4월 9일 어른들이 싸우고 싶었던 아이 싸움 <대학살의 신> 주제를 압축시켜 버린 단 하나의 소품, 이런게 거장의 힘인가보다.
2012년 영화부산 vol 01(통권 41호), 리뷰, 필름 리뷰. 2012년 7월 23일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서른살의 성장영화
2008 Spring (통권 25호), 특집기획. 2008년 3월 30일 [펀치 드렁크 러브] '존 브라이언'은 배리와 레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의 후반부에선
그들의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을 극적으로 잘 표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