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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화부산 vol 22(통권 62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7월 14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일즈맨>

  • 글 ·
  • 작성일2021. 01. 14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Jodaeiye Nader az Simin>(2011)에서 라지에(사레 바이에트 분)는 치매에 걸린 나데르의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버리자 그를 찾으러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교통사고는 라지에가 유산을 하게 된 원인일지도 모르는, 그리고 결국은 라지에를 종교적 믿음 앞에서 무너지게 만들어 버리는 서사의 중심사건이다. 하지만 영화는, 서사의 중요한 변곡점인 이 교통사고 장면을 생략해 버린다. 결국 영화는 무엇 때문에 라지에가 유산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끝난다.
이렇듯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영화 속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의 영화는 폭력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으며, 무엇이 원인인지, 누구의 과실이 더 큰지를 분명히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보여주지 않는다’라고 하는 이 묵언적 선택은 기묘한 힘을 가진다. 파르하디는 결정적인 서사의 단서를 보여주지 않는 것을 통해 다른 위치, 다른 장소,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 산포해 있던 관계의 끈들을 한 곳으로 엮어낸다. 그의 영화는 중심이 되는 폭력의 순간을 외면하거나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일상으로 여겨졌던 풍경들이 가진 여러 가지 혼란들을 포착한다. 이런 점에서 이 ‘보여주지 않음’이 가지고 있는 외면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보여줌’의 장치로서 역할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혹은 무엇을 보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런 맥락에서 <세일즈맨Forushande>
(2016)의 보여줌/보여주지 않음의 대비는 의미심장하다. 초반부 라나(타라네 엘라두스티 분)와 에마드(샤하브 호세아니 분) 부부가 이사한 집에서 이전 세입자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영화는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이 이전 세입자의 존재를 드러 내지 않는다. 그러나 모습을 알 수 없는 이 미지의 여인은 미혼모의 삶을 살았던 흔적과 매춘부라는 이력, 남성-가부장 권력에게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있었다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사남(미나 사다티 분)의 사회적 위치를 연상시키는데, 특히 이 유사성은 사남의 아이가 벽의 낙서를 이어 그리는 순간에 명확해진다. 주목할 점은 사남과 이전 세입자가 연장선상에 놓이면서 사남(혹은 이전 세입자)이 가졌던 계급-젠더적인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라나와 에마드의 집이라는 공간 속에 기입된다는 데에 있다. 그들의 집에는 이전 세입자의 짐들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매춘부를 찾는 음성 메세지들도 여전하다. 이전 세입자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녀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사남의 아이가 낙서를 통해 그 흔적들과 공명하는 순간 문제는 연장되고 지속될 것임을 영화는 암시하는 것이다. 결국 라나와 에마드의 집은 새 주인을 맞이했음에도 여전히 계급적이고 젠더적인 공간인 것이다.


또 다른 장면을 보자. 영화는 강간미수와 폭행의 순간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이 신(Scene)에서 카메라는 라나가 열어둔 문을 천천히 줌인함으로써 약간의 불안감을 조성하다 갑자기 슈퍼에서 계산하는 에마드로 넘어간다. 이 ‘보여주지 않음’은 명백히 의도적이다. 영화는 왜 그 순간을 비워 버리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보여주지 않음으로 인해서 부각되는 ‘보여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여지지 않은 폭력 이후의 라나는 어떻게 보여지는가? 그녀는 전적으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극단 동료들에게 오해를 받는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외간남자를 집에 들인 여자가 될 뿐이고,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며, 외롭고 무서운 집을 떠나지도 못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러나 라나를 폭행한 범인의 존재는 어떠한가? 이웃들의 환멸의 화살은 오히려 이전 세입자로 대표되는 여성 일반을 향해 있고, 범인의 폭력은 부각되지 않는다. 이후 범인이 밝혀진 후에도, 노인과 가장이라는 사회적 위치는 범인의 잘못을 흐릿하게 만들어 버린다. 결국 잘못한 사람은 누구인 걸까?


이렇게 <세일즈맨>의 ‘보여주지 않음’은 적극적으로 ‘보여줌’의 역할을 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며,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영화는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이냐고 되묻고 있을 뿐이다.
 

구형준

영화평론가, 라는 직함으로 종종 글을 쓰긴 하지만 온당한 직함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영화가 건네준 감흥을 가능한 논리적으로, 하지만 정직하게 대면해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kbo9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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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원 부대의 장렬한 최후를 바라본 라더스 제독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들의 포스는 곧 저버릴 수 없는 대의와 희망이었다.
2017년 영화부산 vol 23(통권 63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10월 16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목소리의 정체 <네루다> 오스카는 감독의 상상력의 산물이니, 실존인물 네루다의 문학과는 무관하다.
2008 Winter (통권 28호), 뉴스, OST & 맛집. 2008년 12월 25일 러브 어페어 수 많은 러브스토리가 있고 러브테마가 있지만 혹시라도 아직 영화를 안 보신 분이 있다면 눈물나게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감동적인 음악에 흠뻑빠져 보시길 바란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2(통권 52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1월 1일 [인터스텔라]의 철학, 무엇을 말했나? 우리가 재미로 즐기는 영화 속에 스며들어있는 서구의 정신세계를 흥미롭게 관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인터스텔라>는 인문학적 시선의 해석과 도전을 기다리는 작품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2006 Winter (통권 16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6년 1월 21일 나의 결혼원정기 라라의 망명소식을 듣고 과수원길을 한걸음에 내달리는 만택의 환한 웃음을 기억하며 가슴 따뜻하게 극장문을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9(통권 69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6월 3일 경계선의 사람들 내가 돈과 토니의 웃음을 마냥 행복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ART WORK, 그러니까 ‘예술을 한다’는 것에 관해, 두 예술가의 협업은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프린트하여 그들이 머무르는 장소의 벽만큼 커다랗게, ‘경의’를 담아 붙이는 ART WORK이다. 
2004 Winter (통권 12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4년 12월 7일 내 머리속의 지우개 약간의 치매가 있으신 할머니를 사랑이라는 매개로 다시 한 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준 영화였기에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다.
2007 Winter (통권 20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7년 1월 3일 Asian Network KFCM 한국영상위원회협의회 / KFCM 한국영상위원회협의회
2008 Autumn (통권 27호), 리뷰. 2008년 9월 25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제목부터가 두 주인공의 만만치 않은 대결구도를 가늠케 한다.
2008 Summer (통권 26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6월 29일 도레미파솔라시도 “너 아니면 안돼” 사랑해서 … 미안해
뉴스, OST & 맛집. 2016년 6월 1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그녀가 작곡한 사진을 듣다] 영화 < Her >을 들으며
2017년 영화부산 vol 22(통권 62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7월 14일 <언노운 걸>: 열어젖힌 투명한 경계 <언노운 걸La lle inconnue>(2016) 속 공간은 허락받은 자만이 드나들 수 있고, 승인된 자만이 공간의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오늘따라 커피 맛이 쓴 이유 - 영화<노 임팩트 맨> 살아오면서 환경에 끼쳤을 엄청난 영향을 진지하게 반성해 본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어른’이라는 굴레 안에서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어른이 되어버린, 혹은 어른이라고 믿고 싶은 지금 우리도 여전히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임을 해원은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리뷰, OST & 맛집. 2016년 12월 07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나 좀 고쳐주세요] 영화 <데몰리션 DEMOLITION>을 들으며
뉴스, OST & 맛집. 2016년 10월 5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일]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을 들으며
2015년 영화부산 vol 13(통권 53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4월 1일 FILM REVIEW 유하, 혹은 탈성화의 형식에 대하여 [강남 1970] <강남 1970>의 유하 감독이 시인이라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유하가 시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가 1990년대의 한국문학 담론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라는 점이다.
필름리뷰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부산과 이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번의 죽음과 사랑에 관한 영화다. 주인공 장해준(박해일 분)의 아내 정안(이정현 분)이 있는 도시이면서 해준이 부산을 떠나 정착한 도시 이포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무진을 떠오르게 하는 안개의 도시로, 마치 무진이 그러한 것처럼 전국의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한 것을 결합해 탄생한 가상의 도시다. 예를 들어 서래(탕웨이 분)가 해준과 재회하는 수산시장은 마산에서,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박용우 분)과 함께 지내던 초호화 펜션은 남해에서 촬영되었다.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월 21일 <심플 라이프> A Simple Life (2011) 잊히지 않는다는 것은
뉴스, BFC 뉴스. 2016년 11월 3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비명조차 집어삼킨 악몽의 밤 <맨 인 더 다크>] 어둠의 심연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공포는 곧 베일에 싸인 맹인의 정체에 관한 호기심과 결부되어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고픈 도둑들의 심장을 옥죈다.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11월 29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이야기 중의 이야기 <테일 오브 테일즈>]  ‘미’와 ‘추’란 대립적 개념이 환희와 비탄, 삶과 죽음의 역설적 공존만큼이나 미묘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제시한다.
2002 Summer (통권 2호), 리뷰. 2002년 7월 26일 영화다시보기- 불교의 시각에서 본 영화 <달마야 놀자>편 조폭과 불교? 얼핏 생각해도 너무나 황당한 이 결합은 조폭영화 장르 특유의 재미를 불교적 코드를 도입해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2014년 영화부산 vol 08(통권 48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1월 5일 Film Review 소파에 앉은 아이들 [헬리] 법 앞에서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보통의 인간처럼 나는 법관을 지키는 문지기의 등을 여전히 응시할 수 없다
2002 Winter (통권 4호), 리뷰, 강소원의 영화다시보기. 2002년 12월 25일 <재밌는 영화>가 불러온 한국 영화에 관한 몇 가지 생각 <재밌는 영화>가 일면 승전을 거듭하는 한국영화를 자축하는 기념비 같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한때 잘나가던 한국영화에 대한 묘비명처럼 보이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다.
2008 Autumn (통권 27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9월 26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빼앗긴 조국에 대한 한으로 황야를 무정부 상태인냥 누비고 다니는 세 남자의 보물찾기 과정에는 분명 조국을 잃은 슬픔과 자괴감이 깔려 있다. 
필름리뷰 - 부산평론가 4인 영화 리뷰 무국적 역사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전작 <도쿄 소나타Tokyo Sonata>(2008)를 언급하며 “도쿄에서만 촬영했지만 누가 봐도 도쿄를 알 수 있는 장소는 피하려 했다. 가능하면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곳에서 찍고 싶다”고 했다. 릿쿄대학 스승 하스미 시게히코, 하스미의 또 다른 제자이자 대학 동문인 아오야마 신지 감독과의 대담집인 <영화장화>(2018)에서 영화의 무국적성을 이구동성으로 찬미하며 그가 던진 말이다. 여기서 무국적성은 장소, 심지어는 시대를 연상케 하는 것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랬던 그가 첫 역사물이라서 그런 걸까. <스파이의 아내Wife of a Spy>(2020)의 도입부 ‘1940년 고베 명주실 검사소’란 자막은 그의 새로운 시도와 전환의 아이콘으로 봐야 할까. 하스미를 정점으로 하는 무국적 영화의 미학은 이제 포기된 것인가.
2012년 영화부산 10+11월호 vol 02(통권 42호), 리뷰, 필름 리뷰. 2012년 10월 22일 영화홀릭의 영화이야기 - 피안(被岸) : 끝없는 춤 속에 머무르는 꿈, 분홍신(The Red Shoes) 1948 피안(被岸) : 끝없는 춤속에 머무르는 꿈
2012년 영화부산 vol 01(통권 41호), 리뷰, 필름 리뷰. 2012년 7월 23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애니미즘 (animism) 의 극에는 대자연이나 정령이 아니라 진정하게 인간 소외를 완성 시키는,인간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신칸센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아이들 집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필름리뷰 - 부산평론가 4인 영화 리뷰 신화로부터 멀리:노매드랜드 <노매드랜드Nomadland>(2020)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자면 영화 후반부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이 자신이 떠났던 네바다주의 엠파이어 마을로 다시 돌아왔을 때다. 이 마을은 집을 만드는 석고 보드 공장 내 생산품으로 터전이 유지됐다. 하지만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집값이 폭락하고 주택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자 88년 만에 공장 문을 닫았다. 더욱이 이 동네는 주소마저 쓸 수 없게 됐다. 엠파이어는 말 그대로 거대한 사회적 사건으로부터 버려진 곳이다. 펀은 수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 차에 있는 물건을 다시 버리고, 문 닫힌 을씨년스러운 공장을 둘러보기도 한다. 이윽고 그는 비어있는 한 집에 당도한다. 자세한 설명이 나오진 않지만 방과 부엌을 둘러보는 펀의 시선에서 그가 살았던 집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윽고 그녀는 문을 통해 밖으로 걸어 나간다. 카메라는 펀의 뒷모습을 비추고, 그녀의 앞에 놓인 것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들판과 저 멀리 네바다주 어딘가의 설산이다.
2017년 영화부산 vol 21(통권 61호), 리뷰. FILM REVIEW.2017년 4월 26일 모든 것을 잃고 내려갈 때 비로소 보이는 행복 <싱글라이더>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그리고 이러한 행복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꾸리고 나면 그 안에서 숙명처럼 각인된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감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인간의 마음만큼 절실하고 순수한 것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간절함조차 온전히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어긋나기 일쑤인 것이 인간의 나약한 운명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에 집착하고 행복을 갈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