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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영화부산 vol 23(통권 63호), 칼럼, 남다은의 영화樓. 2017년 10월 18일

카메라를 든 ‘나’는 누구인가: 최근 독립 다큐멘터리들의 한 흐름에 대해

  • 글 ·
  • 작성일2021. 01. 15


(지난 몇 년간, 영화제들에 출품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들을 꾸준히 접하면서 이전과는 좀 다른 흐름을 감지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동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을 특정한 경향으로 묶는 일은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큐멘터리들의 한 조류로 여겨질 만한 내용과 형식에 대해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작품들을 경유한 그 생각의 수준이 아직은 어떤 판단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이 글은 작품들을 특정하지 않고 이들을 두루뭉술하게 질문으로 포괄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 화면에는 ‘나’의 가족, 대개의 경우 부모, 간혹 조부모가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온 과거의 기억을 말하는 중이다. ‘나’에게 그 이야기는 모르고 있던 먼 가족사이기도 하고, 함께 경험하고 목격했으나 묻어두었던 은밀하고 사적인 가정사이기도 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만큼 카메라가 몰두하는 건, ‘나’와 가족들이 살았고, 살고 있는 공간의 모습이다. 그 집은 현재 중산층 가정의 평범한 전형이기도 하고, 남루하고 초라하게 벌거벗겨진 공간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종종 지금은 철거가 되거나 뉴타운이 들어선 과거의 터전을 찾아가 그 풍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러한 이미지들과 가족들의 구술 사이에는 어김없이 ‘나’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나’의 부모가 걸어온 삶의 궤적, 그리고 그 부모와 ‘나’가 서 있는 현재의 토대가 한국의 근현대사 혹은 현재의 사회적 이슈와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 보인다. 이를테면 군부독재, 산업화 등과 같은 정치와 자본의 격변기가 ‘나’의 가족사에 새겨진 굴곡과 함께 상기된다.


요컨대,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주로 여성 감독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제작되었던 사적 다큐멘터리들의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들은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구분 짓는 틀 자체를 의심하며 ‘보편’과 ‘객관’으로 규정되던 거대 담론의 매커니즘에 대한 저항을 공표했다. 혹은 가족사를 들여다봄으로써 ‘공적’ 역사가 누락해온 상처 입은 파편적 기억들을 적극적으로 불러와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새삼스러운 화두는 아닐지라도 이렇게 물어볼 수는 있다. 최근 다큐멘터리의 한 흐름은 사적 담론과 공적 담론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묻던 지난 다큐멘터리들의 계열에 있다고 말해도 될 것인가.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도 같지만, 그렇게만 대답하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다. 앞에서 거칠게 요약한 최근의 다큐멘터리들은 대항 담론의 측면에서나 기억에의 의지 차원에서 볼 때, 영화의 목적의식이 상대적으로 불분명하거나 영화를 추동하는 힘이 좀 다른 데로 분산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들은 2000년대 초반의 영화들에서처럼 ‘나’에서 출발하지만, ‘나’와 역사 혹은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 사이에서 위태롭게 진자 운동하는 쪽도, 오직 ‘나’의 육체적 실존만으로 카메라와 실험적으로 대결하는 쪽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최근 다큐멘터리들 속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 외적세계가 있다. 그리고 가족이든, 공간이든, 풍경이든, 사회이든, 외적인 세계를 영화로 불러내는 ‘나’가 있다. 지금의 나를 규정하거나 설명할, 사건이라 부를 만한 직접적인 무엇이 현재의 그 외적세계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그 외적세계를 경유해서 그려지는 ‘나’라는 실루엣, 즉 최소의 주체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카메라를 들어야만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를 정의할 내외적으로 기댈만한 물질적이고 정서적인 무엇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은 ‘나’는 카메라를 든 존재라는 점이다. 공적 담론을 균열하거나 해체하려는 목적, 거기에 기입되고자 하는 욕망이나 담론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의지 같은 것들을 압도하는 바는 카메라를 든 존재로서의 자의식 자체인 것 같다.


카메라를 든 ‘나’로서 존재의 정당성을 승인받고자 하는 욕구가 다른 무엇을 앞설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건 ‘나’와 피사체 사이의 필연성을 찾는 일일 것이다. ‘나’의 카메라와 피사체는 영화적으로 어떻게 접합할 것인가, ‘나’의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는 어떠한 관계가 성립되고 설정될 수 있을 것인가, 당연한 물음이지만, ‘나’의 카메라는 그것을 왜 찍어야만 하는 것인가. 이는 곧 ‘나’와 피사체 사이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이며 무엇보다 시간적인 거리를 매개하는 일이다. 달리 말해, 그것은 예술적이고 윤리적인 필연으로서의 형식적 매개를 발견하고 고안하는 일이다. 이 글에서 염두에 둔 최근의 다큐들은 현실 폭로와 운동을 대의명분으로 삼던 일련의 액티비즘 다큐들과 비교해 자신들이 적어도 그 매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대답에 선뜻 동의하기는 망설여진다. 우선 이들이 줄곧 영화의 기반으로 삼는 내밀한 가족사라는 화두가 ‘나’의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 영화적인 필연성을 부여하는 그저 쉬운 길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의 과거, 인터뷰, 공간 등은 사적 다큐로서의 밀도와 독창성을 보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신, 카메라를 든 ‘나’의 정당성을 자동적으로 확보하는 소재의 선택처럼 비춰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완전한 타자라고도, 온전한 자아라고도 할 수 없는 가족이라는 모호하고 어려운 질문이 오히려 다큐의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 놓인 복잡한 거리를 해소하는 손쉬운 해법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 몇 가지 지적할 만한 문제가 더해진다.


하나는 이들이 가족사의 아픔을 찍을 때 발생한다. 아마도 의도는 영화를 통해 비로소 상처를 대면하고 공감하는 데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타자의 고통을 영화화 하는 일에 대한 진중한 머뭇거림, 좀 거칠게 말해, 타자의 고통을 착취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망설임이나 자기 의심이 이들의 시선에 잘 묻어나지 않는다. 그들이 찍는 대상이 앞서 말했듯, 완전히 낯선 타자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사실, 즉 그 고통이 자연스레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가족의 민낯 앞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밀착하는 일을 큰 거리낌 없이 용인하는 것 같다. 마치 그것이 ‘나’의 상처와 용기 있게 마주하는 행위와 다름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다른 하나는 이 영화들이 그 가족사를 단순히 ‘사적’인 차원에 가두지 않고 한국 근현대사의 맥락 안에 위치시키려 할 때 일어난다. 카메라 앞에 선 부모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세월 그들이 택한 길들에 상응하는 한국사회의 여러 국면들에 대한 사진 기록, 영상 자료들이 삽입된다. 노년이 된 부모가 영위하는 현재의 일상적 순간들, 대개의 경우는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적’이지 않은 삶이 보인다. 그야말로 사적인 역사와 공적인 역사를 병치해서 가족사를 설명하려는 방식은 이 영화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스타일로 굳어지고 있다. 개인의 삶을 사회구조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설득력이 있고 존중할 만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역사화의 과정에서 개별 인물의 행적, 기억, 욕망 등에 내재된 특수성들이 서사적으로 용이한 인과관계 안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들이 아버지, 어머니의 삶의 특수성을 보편의 역사 안에서 읽어내려고 할 때, 인물들의 과거와 기억 돌기들은 사유되는 대신 전시된다는 인상에 더 가까워진다. 그들의 선택들과 그들의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의 자리는 어느새 힘없는 수긍으로 채워진다. 조금은 심술궂지만, 이런 의문도 생긴다. 더없이 극적인 한국 근현대사를 지나온 부모세대의 삶의 편린들 중에 그 역사적 흐름 안에서 상징화되지 못할 이야기가 과연 있을까. 그러니까 이 영화들이 가족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만나게 하는 이와 같은 방식만으로는 더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덧붙여,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의 잦은 사용이 불러일으키는 문제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다큐의 목소리가 주로 규정적 사실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며 스스로를 보편의 위치에 두던 때가 있었다. 이와 달리, 최근 다큐멘터리에서 예외 없이 흐르는 내레이션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분열적이며 정리되지 않은 내적 흐름이나 기억들을 발화하는 자기고백적인 성격을 지닌다. 일종의 일기체적인 형식으로 부를만한 이러한 내레이션은 카메라를 든 ‘나’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를 확 당겨주며 지금 그 자리에서 무언가를 찍고 있는 카메라의 필연성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하고 내세우는 기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내레이션은 내용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대개 과하다는 인상을 주고, 종종 영화의 비약이나 느슨함을 가리는 언어 행위처럼 느껴진다.


이런 장면들이 있다. ‘나’의 카메라는 철거가 진행되는 도시 변두리의 어떤 장소에 가서 그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다. 그 이미지 위로 어린 시절 자신이 살던 곳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나’의 내레이션이 고요하고 끈질기게 나열된다. 내레이션의 이러한 방식이 부정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나’는 그곳에서 유사한 운명에 처했던 과거 자신의 터전을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다큐멘터리들의 흐름 안에서 이제는 보편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는 재개발의 풍경이 ‘나’의 특수한 기억을 읊는 내레이션과 만날 때, 이 둘의 결합은 영화적으로 안이하며 어딘지 도취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미지와 내레이션 사이의 영화적 간극이나 현재의 풍경과 과거의 기억 사이에 놓인 시간적 간극이 아무런 충돌이나 사유 없이 한순간 증발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무엇보다 ‘나’에 귀속된 이 내레이션이 ‘나’가 닿을 수 없는 역사, 공간, 타인의 기억들을 ‘나’의 기억과 이야기 덩어리로 쉽게 환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내레이션의 그런 기능과 과잉된 자기연민의 감정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맥락에서 논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면이 있으나, 카메라를 든 ‘나’의 미약한 주체성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고심하는 위의 경우들과 좀 다른 사례에 대해서도 짧게 말해두려고 한다. 가족사를 경유한 영화들에서는 아직 드물게 보이는 방식이지만, 카메라를 든 ‘나’와 피사체의 거리 앞에서 카메라가 ‘나’를 지워버리고 일순간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을 감행하는 순간들이 있다. 말하자면, ‘나’의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매개를 고안하는 대신에 영화 자신이 직접 그 매개가 되고자 하는 태도라고 해야 할까. 카메라는 마치 ‘나’의 손을 떠나 스스로 움직이듯 운동하며 비인칭적이고 초월적인 자리에서 피사체의 기억이나 고통을 물질화하고 체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모든 카메라는 일면 영매의 속성을 지니며 영화의 고유한 신묘함 또한 일정부분 거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다큐멘터리들에서 목격되는 영적인 카메라에 대한 다소 무비판적인 매혹은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에서 다큐가 발견해야만 하는 매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의 결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의 위태로움과 불완전성을 지운 카메라의 그런 자율적인(?) 활동이 영화적인 궁지를 형식적인 과장으로 피해가는 방식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보다 정리된 논의를 개진할 기회가 있기를.)


지난 일 년 간 제작된 다큐멘터리들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장면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소재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삽입하는 그 장면들은 어김없이 촛불의 광장으로 채워진다. 카메라를 든 ‘나’는 촛불의 광장에 서 있고 그곳에서 가장 활기차게 움직인다. 영화 속에서 그 장면들의 등장은 때때로 뜬금없고 어색하며, 그것들의 사용은 상투적일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든 현재의 ‘나’를 피상적으로나마 역사적 주체로 의미화하려는 절실함 또한 거기 배어 있는 것 같다. 그 절실함을 표출하는 방식이 성급하고 순진하며 대체로 성기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 감정이 한없이 미약하고 무력한 민낯의 현실 속 ‘나’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안간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카메라를 들고서라도 체념이나 냉소가 아니라 옅은 희망의 편에서 ‘나’를 다시 시작해 보려는 시점과 마주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카메라를 통해서 구축된 ‘나’라는 허상에라도 감상적으로 기대 보려는 것일까.

남다은 연세대학교 비교문학협동과정 석사 졸업. 2004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 현재 계간 편집위원. 평론집 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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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Summer (통권 30호), 칼럼, 부산에서 보내는 편지. 2009년 7월 19일 부산에 부치는 연서 너를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지운 게 아니었다. 아직 내 어머니가 묻혀 있는 그곳. 그렇다. 내 고향은 부산이다.
2011년 부산파랑 10+11 (통권 39호), 칼럼. 2011년 10월 10일 Column - 영화는 증상이다 영화보기는 가장 단순한 또는 수동적인 참여 행태가 된지 이미 오래고, 봉사경험을 쌓으면서 영화와 인연을 쌓으려 노력하기도 하며 상업, 학문, 예술 집단들은 나름대로 영화와 자신들의 것을 엮는데 궁리를 더한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8(통권 68호), 칼럼, 장지욱의 씨네 잡학사전. 2019년 1월 17일 #키워드_영화가 예술에 보내는 헌사 키워드를 쫓다 만나는 영화들을 통해  별별 잡동사니 지식을 섭렵해보는 ‘씨네 잡학사전’ 
#트렌드-부산영상위원회 어디까지 왔나 부산영상위원회 20년의 경제적 효과와 향후 방향성 문화예술 분야가 아닌 경제학 전공자가 부산영상위원회의 성과와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하려니 매우 조심스럽고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이 글을 통해 관계 기관과 관계자분들이 부산영상위원회 의 미래를 계획하시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일반 대중들이 부산영상위원회의 주요 사업과 활동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2010 Summer (통권 34호), 뉴스, Asia Film Report. 2010년 7월 14일 중국, 7월 1일부터 “속지(屬地)심사제” 전면 시행 검열제도 완화의 첫걸음 될까?
2011년 부산파랑 12+01 (통권 40호), 뉴스, 웹툰, 정훈이 만화. 2011년 12월 6일 정훈이 만화-아더 크리스마스 Cartoon - 아더 크리스마스
칼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2018년 6월 20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극장을 생각하는 시간, 극장이 불러일으키는 생각 서울독립영화제 개봉작 <너와 극장에서>
칼럼, 남다은의 영화樓. 2018년 1월 3일 한국영화 속 ‘먹방’에 대한 단상 한국영화 속 ‘먹방’에 대한 단상
2010 Spring (통권 33호), 칼럼. 2010년 4월 15일 어머니품 같은 부산을 그리워할 것이다. 부산이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자식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인들과 함께 한다면 그 영화인들 또한 부산을 어머니의 품처럼 생각하고 항상 그리워할 것이다.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명절 때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 오는 심정으로 부산을 찾을 것이다.
2017년 영화부산 vol 21(통권 61호), 칼럼. 문학평론가 박형준의 영화인문학.2017년 4월 26일 공조의 (불)가능성:State의 이중 정치 건강한 국가와 민족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은 우리 모두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3(통권 53호), 칼럼, 무비파일. 2015년 4월 1일 INSIDE 한국영화산업 저작권 침해가 '6개월 간 100만원 미만이면 형사처분 면제'라는 저작권법 개정안
칼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2018년 12월 12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함께하기 위한 그들 각자의 모색 <나는 보리>, <졸업>, <동물, 원>, <어른이 되면>을 보며 든 생각
2011년 부산파랑 08+09 (통권 38호), 칼럼. 2011년 8월 10일 Movie Plus Column 3 - 루저 신드롬과 마이너리티의 눈물 : 꿈꾸는 다수의 마이너를 위한 소고 어느 것이 진정 자신의 감정이며 이상인지. 청춘의 시린 꿈과 열정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칼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2018년 8월 16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고백의 쓸모 박배일 감독의 <소성리>
2006 Spring (통권 17호), 칼럼, 부산과 영화. 2006년 3월 5일 부산과 영화 부산영화의 선사시대( 1 9 2 0 년대 II ) 부산은 무성영화의 천국
2011년 부산파랑 08+09 (통권 38호), 뉴스, 웹툰, 정훈이 만화. 2011년 8월 10일 정훈이만화- 정훈이의 파랑툰 With Busan - Cartoon : 정훈이의 파랑툰
장지욱의 씨네 잡학사전 #키워드_영화가 예술에 보내는 헌사 키워드를 쫓다 만나는 영화들을 통해 별별 잡동사니 지식을 섭렵해보는 ‘씨네 잡학사전’ 이번 주제는 영화가 예술에 보내는 헌사!
2009 Summer (통권 30호), 칼럼. 2009년 7월 19일 한국 영화사와 영화 도시 부산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와 시네마테크 부산과 부산영상위원회의 활동과 후반작업 기지 활성화를 토대로 영상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지만 부산 영화의 정신과 역사에 대한 평가 작업은 영화 도시 부산의 존재감과 자긍심이라는 주춧돌을 놓게 할 것이다.
2016년 영화부산 vol 16(통권 56호), 뉴스, 사설. 2016년 1월 8일 영화도시 부산에 뜨거운 박수를! 새해에는 더욱더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길 바라며, 2016년에도 더 준비하고 고민하며 공감하는 부산영상위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칼럼, 남다은의 영화樓. 2017년 9월 26일 뜨거운 들숨과 차가운 날숨, '매혹당한 사람들'의 기묘한 호흡 '뜨거운 들숨과 차가운 날숨, '매혹당한 사람들'의 기묘한 호흡'
맛있는 영화: 영화로 보는 부산의 음식 <스시 장인: 지로의 꿈> 그리고 <올드보이> 부산의 향토음식을 꼽으라면 나는 밀면, 돼지국밥, 재첩국, 구포국수, 붕장어 구이 등과 함께 ‘일식’을 꼽는다. 일본음식이 어떻게 부산의 향토음식이 되느냐며 다들 의아해 한다. 사실 여기에는 제법 긴 역사적 배경이 있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7(통권 67호), 칼럼, 윤성은의 긴 영화. 2018년 10월 21일 그 아이가 정말, 살아남게 된 이야기, <살아남은 아이> 연필을 관통하는 긴 흑심처럼 은찬 부모의 심리와 기현과의 관계 변화라는 표층적 서사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죄의식에 대한 질문이 날카롭다.
칼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2018년 9월 12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영화의 시효와 시의 ‘2012년 사건을 다룬 영화의 2018년 개봉’, <더 블랙>에 대하여
2014년 영화부산 vol 09(통권 49호), 칼럼. 2014년 4월 4일 황경민의 객설 - 독립이냐, 예속이냐? 공생이냐, 공멸이냐? ‘핵’은 부산시민, 아니 대한민국 전체, 아니 인류 전체의 문제다.
탈핵독립선언문
칼럼 2-포커스온OTT 꿈결 같은 시간 - 넷플릭스 <20세기 소녀> 로맨틱 코미디가 K콘텐츠의 황금알이었던 적이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2001),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미녀는 괴로워>(2006)와 같은 작품들은 높은 흥행 성적과 뜨거운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우며, 발랄하고 유쾌한 등장인물들이 우리를 웃게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로맨틱 코미디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n백만’을 찍는 작품 수도 점차 적어졌다. 그 자리는 과격한 액션과 선명한 이분법적 구도로 채워진 작품들로 대체되었다.
2014년 영화부산 vol 10(통권 50호), 칼럼. 2014년 7월 3일 영화 그리고... - 뉴미디어 시대의 환영들 뉴미디어의 영상예술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상상 세계를 지배해 나가고 있다.
2012년 영화부산 10+11월호 vol 02(통권 42호), 칼럼, 달시의 한국영화. 2012년 10월 22일 달시의 한국영화, 변화의 중심에서 영화제가 찾아가야 할 회고전(Retrospective)의 의미 최근 대중이 영화를 접하는 방식 이 변화하면서 이제 영화제들이 회고전과 특별전의 전략과 목적에 대해 재평가해 볼 적절한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칼럼. 2013년 10월 5일 부산에 보내는 편지- 늘 응원하는 어머니가 있는 도시, 문디새끼는 부산이 좋다 결국 부산은 이렇게 편지 하나 쓰는데도 나에게 불을 지피는 도시이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2(통권 52호), 칼럼, 사회학자이성철의 씨네라마. 2015년 1월 1일 미 군정기 지역영화사의 탐색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일 뿐만 아니라 대면하기와 끌어안기의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는 점이다.
칼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2019년 5월 22일 [정지혜의 독립영화 읽기] 적요의 풍경으로 이끌어 김무영 <밤빛>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칼럼, 사무처 편지. 2013년 1월 21일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새해는, 영화계도 부산도 두루 활력 넘치고 소외되거나 차별 받는 사람 없이 공정하고 품격 있는 세상이기를 소망한다. 
2006 Autumn (통권19호), 뉴스, 업체탐방. 2006년 10월 4일 조선키네마㈜의 설립목적과 실체 태생부터가 자유롭지 못했던 한 영화제작사의 침몰사례를 한국영화역사는 처음부터 겪게 된 것이다.
2010 Summer (통권 34호), 뉴스, Asia Film Report. 2010년 7월 14일 아이패드(iPad)와 영화간의 불협화음 아마 당분간은 아이패드를 활용하여 영화는 즐길 수 있지만, 영화 홈페이지는 즐길 수 없다는 아이패드와 영화의 이상한 부조화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0 Winter (통권 32호), 부산에서 보내는 편지. 2010년 1월 16일 언제나 힘이 되는 그곳, 사랑한다 부산아! 언제나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힘이 되는 부산, 부산아 사랑한다.
2009 Spring (통권 29호), 뉴스, 영화 그리고 부산. 2009년 3월 19일 근대 부산극장사 4 활동사진 상설관 시대의 (1914년-1929년)[Ⅱ]
2010 Spring (통권 33호), 뉴스, Asia Film Report. 2010년 4월 15일 신들의 도시 네팔, 신이 물려준 고유의 로케이션 유산을 찾아가다 부산에서 개최된 아시안영상정책포럼(Asian Film Policy Forum)에서 촬영 로케이션지로서의 독특한 매력을 알린 바 있는 네팔의 영화적 환경을 알아보고 네팔영화개발위원회와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AFCNet)와의 교류를 활발히 하고자 이번 방문은 이루어졌다.
칼럼, 남다은의 영화樓. 2018년 2월 28일 환상 없는 거리, 거침없는 걸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1년 부산파랑 06+07 (통권 37호), 칼럼. 2011년 6월 11일 Movie Plus - Column #1 : ‘누군’가 보고있다 나를 포함 한 기성세대들은 그 ‘누구’를 의식하기는커녕 ‘취한 배’에 탄 줄도 모르고 마냥 징징대거나 히히대며 그냥 살아가고 있다.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 나가고 있다.
2011년 부산파랑 12+01 (통권 40호), 뉴스, OST & 맛집. 2011년 12월 7일 영화인 추천 맛집 - 영화 [퍼펙트게임] 부산 그리고 부산야구를 그린 영화 <퍼펙트게임>은 승부만을 강요했던 비정한 세상에 자신들의 꿈을 걸어야 했던 두 사나이, 최동원과 선동열의 고독하고 치열한 맞대결을 다룬 작품으로, 
2015년 영화부산 vol 14(통권 54호), 칼럼. 2015년 7월 2일 부산에서 보내는 편지- 남포동을 걸었지  내게 남포동 거리는 그런 곳이다. 조금은 바보 같기도 하고, 조금은 안쓰럽기도 한 스물한 살의 내가 떠오르는 곳.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칼럼. 2013년 7월 6일 메기 리의 부산인더프레임 [퍼펙트 게임] 꿈의 구장 부산 스포츠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감독의 용기가 엿보인다. 또한, 이 장 면은 경기 끝에 양 팀 선수들이 형제처럼 서로 얼싸안으며 모든 적대심을 날려버리는 순간의 감동을 증폭시키는 장치의 역할도 해냈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2(통권 52호), 칼럼, 내 멋대로 차트. 2015년 1월 1일 영화로 보는 신년 운세 가족운, 애정운, 취업운, 결혼운, 금전운… 쌍화점 말고 영화점을 시작해 본다.
칼럼, 이은선의 영화인. 2017년 9월 8일 존재를 연민한다, 양익준 존재를 연민한다, 양익준
2010 Winter (통권 32호), 칼럼. 2010년 1월 16일 부산이라는 장소, 혹은 기억과 영화 영화에서 장소가 최소한 의 윤곽 혹은 추상적 지명으로만 남고 모든 빈틈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로 메워지는 시대가 오면 부산 로케이션은 이제 영화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뉴스, BFC 뉴스.2017년 6월 14일 봉준호, 부조화와 난장판을 즐기는 영화 장인(匠人) 봉준호, 부조화와 난장판을 즐기는 영화 장인(匠人)
2015년 영화부산 vol 12(통권 52호), 칼럼, 정한석 평론가의 한국영화단상. 2015년 1월 1일 통조림이 된 한국영화들에 관한 토로, 한겨울에 쓸쓸한… 이 깊은 겨울 밤에 올 한 해 내가 좋아한 한국영화 다섯 편을 따뜻한 마음으로 꼽아 보려다 생각은 이렇게 휩쓸린 것이다.
칼럼 1 - 외국영화의 숨쉬는 배경화면 샘 멘데스 감독 : 상승과 하강의 늪 <007 스카이폴>과 <1917>

샘 멘데스 감독의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1999)를 보면 허접한 흰 비닐봉지 하나가 메마른 낙엽들과 함께 허공을 맴도는 장면이 나온다. 바람에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그 생경한 장면은 무려 3분 이상 지속된다. 관계의 종말과도 같은 그 세계는 <007 스카이폴Skyfall>(2012)과 <1917>(2019)에 이르러, 광활한 습지의 지표면과 공중에서 마구 굽이치며 서로의 목을 총구로 겨누는 구조로 재구성된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칼럼. 2013년 7월 6일 사회학자 이성철의 씨네라마, 열정은 어떻게 생활이 되는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가 삶에 지쳐 있으나 희망의 끈들은 놓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맛있는 영화: 영화로 보는 부산의 음식 <퍼팩트맨>과 백화양곱창 <퍼펙트맨>은 대부분 부산에서 촬영됐다. 동백섬 선착장, 을숙도 철새도래지, 청사포, 광안리 친수공원, 광안대교, 부산항 대교, 황령산 봉수대, 산복도로, 송도 스카이워크, 수영만 요트 경기장, 사직야구장, 영도 깡깡이마을 등 부산영상위원회가 아니라 부산관광공사의 요구를 수용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부산 명소를 아낌없이 배경으로 활용했다. 심지어 내러티브를 제거하고 보면 부산 홍보영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답게 담았다.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칼럼, 김영진의 주장과 논평. 2013년 1월 21일 텔레비전에 새로운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온다면 다른 영화를 보고 느끼고 이해하게 해주는 공간 절대 부족
필름리뷰 - 부산평론가 4인 영화 인터뷰 적정한 거리를 찾아서 <에듀케이션>은 여러 층위에서 ‘답답함’의 감각을 표출하는 영화 같다. 그것이 큰 흠결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유는, 본편이 여러모로 자신의 기술적인 결함이나 돌출적인 부분들을 민망해하기는커녕 도리어 여실히 드러내는 듯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끼어드는 자동차 소음이나 개가 짖는 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통제되지 않은 과정에서 촬영되었지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파편들을 큰 염려 없이 용인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아니, <에듀케이션>은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주는 불편함을 영화 내적으로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는 성희(문혜인 분)라는 인물에게 답답함이라는 정서를 긴요하게 요청한다. 성희는 시종 답답해한다. 허리 통증으로부터, 숨 쉬며 살기 버거운 이 사회로부터, 그리고 현목(김준형 분)이라는 아이의 무구하고도 부박한 언행들로부터.
2008 Spring (통권 25호), 특집기획. 2008년 3월 30일 부산 최초의 극장 행좌의 역사성 검증보고 1915년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잊혀진 채 묻혀 있던 부산 최초의 극장「행좌」의 흔적들과 우리 영화사와의 접목,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끊임없이 발굴, 검증,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윤성은의 긴 영화 불편한 진실의 완벽한 봉합, <완벽한 타인> 단순히 자신의 문제를 덮기 위한 방어 기제에서부터 나온 것인지, 인간의 본성을 통찰한 데서부터 나온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칼럼, 정한석의 영화공원. 2018년 9월 10일 [정한석의 영화공원] 스크린의 생존자 *스포일러 있음
2011년 부산파랑 06+07 (통권 37호), 칼럼, 2011년 6월 11일 Movie Plus - Column #2 : 명멸하는 이론 사라져가는 주체 만약 영화가 이론으로부터 철수함으로서 주체를 부정한다면, 대상으로서의 영화는 어디에 존재할 수 있을까. 
2016년 영화부산 vol 19(통권 59호), 칼럼, 철학자 이지훈의 영상몽상. 2016년 10월 5일 그녀와 영화, 의인화된 영화 인물과 영화 사이의 의인화적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이다.
칼럼, 남다은의 영화樓. 2017년 7월 4일 폭력과 희열 사이, 두려움과 대담함 사이: 그녀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폭력과 희열 사이, 두려움과 대담함 사이: 그녀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2009 Autumn (통권 31호), 칼럼. 2009년 9월 19일 ‘ 영화·부산·기자’ 의 추억의 신문(1996-2009) 읽기 영상도시 부산의 꿈은 이루어진다 !
2012년 영화부산 vol 01(통권 41호), 칼럼, 김영진의 주장과 논평. 2012년 7월 23일 국제영화제는 힘이 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문화의 성숙을 꾀하게 할 힘이 있는 이벤트라는 것,하지만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제부터라도 뭔가 다른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2011년 부산파랑 12+01 (통권 40호), 칼럼. 2011년 12월 7일 Column - 부산의 다큐멘터리 그 경험이 그들에게 소중한 영화적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9(통권 69호), 칼럼, 문학평론가 박형준의 영화인문학. 2019년 5월 27일 말의 연대와 항거: 저항적 내셔널리즘을 위한 변명 기미년 만세운동이 폭발적으로 융기한 지 백 년이 되는 해이다. 3·1절을 앞두고 엄유나 감독의 &l
2017년 영화부산 vol 20(통권 60호), 칼럼, 정한석평론가의 한국영화단상. 2016년 12월 28일 <죽여주는 여자> - 소외된 자들의 존엄에 대하여 비록 사회에서 소외되었지만 끝까지 자기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몸부림을 이재용 감독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뉴스, 웹툰, 정훈이 만화. 2013년 1월 21일 정훈이만화-식객 오뎅 편 식객 오뎅 편 _웹툰 정훈이 만화
칼럼, 이은선의 영화인. 2017년 11월 23일 편견에 대항하며, 엠마 스톤 편견에 대항하며, 엠마 스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