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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부산 vol 24(통권 64호), 리뷰, 필름 리뷰. 2018년 1월 1일

망각의 정치학, 기억의 영화 시학

  • 글 ·
  • 작성일2021. 01. 18


“세계는 사라졌다, 내가 널 데려다 줘야 한다.(The world is gone, I must carry you.)” 이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유태계 독일 시인 파울 첼란(Paul Celan)이 쓴 ‘불타오르는, 거대한 하늘Vast, glowing vault’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영화 <망각의 시>를 언뜻 보았을 때, 이란의 거장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떠올렸다. 그러나 알고 보니 같은 이란 출신의 알리레자 하타미 감독의 첫 장편영화였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은 시신보관소에서 일하는 한 노인이다. 그는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속의 삶을 산다. 그의 일상은 죽은 자들을 돌보며, 그들의 스토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이다. 특히 무덤 파는 노인의 친구는 묻히는 자의 스토리를 항상 그에게 들려준다. 노인은 지금까지 묻어준 시신의 수와 그들의 스토리를 모두 기억한다. 또한 어떤 남자가 찾는 묘지의 위치는 물론 그가 누군지도 정확하게 기억해낸다. 그 남자는 노인이 감옥에 있었을 때, 한밤중에 처형된 정치범들을 건물 바닥에 파묻고 회반죽으로 덮어버리는 일을 한 대가로 석방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의 평온한 일상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침입한다. 노인은 두 손이 묶이고 두 눈이 가려진 채 바닷가 사막으로 끌려간다. 이들의 목적은 인근 도시에서 발생한 시위 도중 희생된 민간인들을 은밀하게 폐기 처리하기 위해서다. 며칠 뒤 다시 찾아온 그들은 한 젊은 여성의 시신을 던져놓고 떠난다. 관리소장은 노인에게 시신보관소가 곧 폐쇄될 것임을 알리며 그 일에 대한 침묵과 은퇴를 강요한다. 그럼에도 노인은 자신의 마지막 일과인 것처럼, 그녀를 돌보며 사라져버린 그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짐을 짊어진다. 그리하여 노인은 가짜 출생증명서를 만들어 매장허가서를 받아내고, 거짓 약속으로 가득 찬 선거전단지 뒷면에 부고를 인쇄하여 벽에 부착하는 등의 공식절차를 거쳐 그녀의 장례식을 교회에서 치러준다.
 

영화는 리얼리즘의 틈새를 환상으로 채운다. 영화 속 뉴스에 나오는 동반 자살한 고래 가족이 해안에 떠밀려온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노인은 창문 바깥으로 거대한 고래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본다. 이에 앞서 노인은 시신보관소의 바닥에서 발견한 고래 모양의 귀고리를 젊은 여성의 귀에 달아준 적이 있다. 이 모티프는 아무런 스토리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가족이 느끼는 상실감인 동시에 희망―진정한 망각을 위한―에 대한 시적인 메타포다.
 

이 세상의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이와 비슷한 비극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극 속에서도 삶을 지속시키는 힘은 바로 이러한 스토리며, 죽음은 그 스토리의 결말이다. 노인의 무덤 파는 친구에게는 스토리가 삶이자 죽음이며, 그것의 부재가 곧 망각이다. 그는 마지막이 될 100번째 무덤을 파면서 울먹인다. 더 이상 들려줄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자신의 존재의 의미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심지어 그들의 스토리 그 자체를 망각시키려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부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강요된 망각은 또 다른 폭력, 즉 망각이란 이름의 폭력이다. 칠레의 군부 독재자 피노체트(Pinochet)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인권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망각이다.”
 

과거의 기억을 말하는 것은 곧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재성은 상상될 수밖에 없다. 이게 모든 스토리의 근원인 시가 하는 일이다. 한 인간의 죽음, 그 이면에는 각각 하나의 세계와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강제로 지워질 때 그것들을 기억해내고 완결시킬 때에만 비로소 진정한 죽음과 망각이 시작될 수 있다. 프랑스의 영화이론가인 메츠(Metz)는 어떤 장르든 영화의 본질적 속성은 “스토리텔링”이며 “부재를 현존시키는 것, 즉 부재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썼다. 결국 이 영화는 망각의 정치학에 대한 저항의 행위로서 스토리의 결말조차 없이 지워져 버린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싸우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기억의 영화 시학이다.
 

박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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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부산 vol 26(통권 66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7월 12일 ‘사라지고 싶다’와 ‘죽이고 싶다’, 청춘의 막막함 앞에서 <버닝>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감독 이창동의 8년만의 신작 <버닝>
2012년 영화부산 10+11월호 vol 02(통권 42호), 리뷰, 필름 리뷰. 2012년 10월 22일 영화홀릭의 영화이야기 - 피안(被岸) : 끝없는 춤 속에 머무르는 꿈, 분홍신(The Red Shoes) 1948 피안(被岸) : 끝없는 춤속에 머무르는 꿈
필름리뷰 - 부산평론가 4인 영화 인터뷰 감정을 끄고 켤 수는 없으니까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2021)의 주인공 진아(공승연 분)가 처음으로 농담을 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의 집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될 남자 성훈(서현우 분)이 진아에게 묻는다. 이 집은 왜 이리 싸냐고.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면 연기가 다르다고 말하는 귀신이 나온 집이라고 그녀는 답한다. 엉뚱한 농담과 쓸쓸한 진실, 사려 깊은 거짓말이 뒤섞인 저 말이야말로 어쩌면 진아의 본모습이 아닐까.
2004 Autumn (통권 11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4년 9월21일 비운의 여배우 김삼화 김삼화, 그녀가 지금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는지 죽었는지는 몰라도 그녀는 참으로 좋은 배우 였으나 불행한 배우였다고 기억한다. 
뉴스, OST & 맛집. 2017년 2월 15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우리는 사랑 앞에 두 번 깨어나는]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을 들으며
2002 Winter (통권 4호), 리뷰, 강소원의 영화다시보기. 2002년 12월 25일 내게 너무 가벼운 그녀 어딘가에 나를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로 생각해줄 남자가 있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2016년 영화부산 vol 17(통권 57호), 리뷰. 2016년 4월 21일 앞에 선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미묘한 간극 <동주>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 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오늘따라 커피 맛이 쓴 이유 - 영화<노 임팩트 맨> 살아오면서 환경에 끼쳤을 엄청난 영향을 진지하게 반성해 본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스토커 핏줄론(論)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 엄마의 블라우스, 아빠의 벨트, 삼촌이 사준 구두. 나는 온전히 나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그곳에 상처를, 남기다 <꽃섬> 슬픔에 공명하는 자기 자신을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타인의 시선이 슬픔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외로운지도 모른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9(통권 69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6월 3일 <로마> - 왜 개똥의 연대는 말하지 않을까? ‘그 하녀’를 위해 ‘그때’의 얼룩과 이별하는 중이다. “리보를 위하여.”는 그런 맥락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2008 Winter (통권 24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1월 30일 지랄 같네… 사람 인연… [사랑]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장면이 없는 영화,〈사랑〉. 이제는 이 영화를 ‘사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Film Review- 사랑이라는 치명적인 페이드아웃 [베티블루] 베티는 영원히 눈부신 스무 살이다.
2008 Spring (통권 25호), 특집기획. 2008년 3월 30일 [펀치 드렁크 러브] '존 브라이언'은 배리와 레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의 후반부에선
그들의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을 극적으로 잘 표현 해냈다.
2012년 영화부산 12.12+13.1월호 vol 03(통권 43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월 21일 <인디아 송>: 불립문자(不入文字)의 세계 India Song(1974) 외로움과 죄의식에 관한 거짓말
2017년 영화부산 vol 22(통권 62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7월 14일 우정에 관하여<런던 프라이드> 우정이 법을 제정하고 정치적 행동으로 확장된 시민들의 승리로 이어진 것임을 느낄 수 있다.
뉴스, 웹툰. 2016년 7월 26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5 부산행 복면작가의 Movie Think #5 부산행
뉴스, 웹툰. 2017년 2월 14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8 공조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8 공조_웹툰
2003 Summer (통권 6호), 리뷰. 2003년 7월 23일 살인의 추억 저열하고 폭력적인 80년대를 추억하다
2010 Winter (통권 36호), 리뷰, 필름 리뷰. 2010년 11월 11일 Review - 이 아이는 죽어야 했다 김백준의 [작별들] 이 아이의 성장이 이토록 가혹한 것을 우리는 그저 지켜볼 도리밖에 없다. 아마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소녀의 삶은 계속된다.
2014년 영화부산 vol 11(통권 51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10월 1일 Film Review - 함께 만들어가는 멋진 인생을 위하여 [멋진 인생] 경제력을 향상시키면서도 내면이 공허해져가는 삶이 아닌, 함께 기쁨을 느끼며 충만해지는 삶을 살아나가는 길을 택한 그들의 공존력이 가급적 많은 이들과 공유될 수 있었으면 한다.
뉴스, OST & 맛집. 2017년 1월 4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하지만 계속 사랑을 할 거예요, 우리에겐 계란이 필요하니까] 우디 앨런의 <애니 홀 Annie Hall>을 들으며...
앨비는 맛도 없고 양도 적은 음식점에 온 느낌이다. 1년 전만 해도 애니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2018년 영화부산 vol 26(통권 66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7월 12일 <소공녀>, 행복하냐고 묻지 마라 이 여행의 시작을 미소가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했기 때문이라 하지 마라.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Film Review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카페 뤼미에르>, 필름리뷰 아마도 요코는 엄마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프레임을 뚫고 나간 열차는 멈추지 않고 종으로 횡으로 시간을 질러갈 것이다.
2014년 영화부산 vol 08(통권 48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1월 5일 Film Review 소파에 앉은 아이들 [헬리] 법 앞에서 그것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보통의 인간처럼 나는 법관을 지키는 문지기의 등을 여전히 응시할 수 없다
뉴스, 웹툰. 2016년 6월 28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3 컨저링2 복면작가의 Movie Think #3 컨저링2
2009 Spring (통권 29호), 뉴스, OST & 맛집. 2009년 3월 19일 거장의, 거장을 위한, 거장에 의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 _Music by Clint Eastwood
2008 Winter (통권 24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1월 30일 사상 최악의 협상극 세븐데이즈 영화 <세븐 데이즈>를 필두로 한국 스릴러 영화가 많이 제작되어 한국영화장르의 주류를 이루었으면 하는 바램이 스릴러 매니아의 한 명으로써 손꼽아 기다려진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4(통권 64호), 리뷰, 필름 리뷰. 2018년 1월 1일 <잃어버린 도시 Z> - ‘Z’ 그 좌표 없는 심연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우아한 리듬과 통찰력으로 우리의 가슴을 내려앉게 만든다.
뉴스, OST & 맛집. 2016년 7월 6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이 미친 사랑의 뽕짝] 영화 <박쥐 Thirst>를 들으며
2007 Autumn (통권 23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7년 9월 1일 D- WAR 디워 한국 기술의 SF영화 D-War는 많은 시도와 실패의 흔적들이 여전히 보였지만 훌륭한 영화였고 그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2007 Autumn (통권 23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7년 9월 1일 돌아온 기억 시작되는 살인 리턴 인스턴트식의 영화 대량생산은 처음엔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을지는 몰라도 언젠가 관객들은 다시 공들여 만든 ‘잘 만든 영화’를 찾아 다시 흩어 질 것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환상적이야! <미드나잇 인 파리> 첫 장면부터 길에 대한 감독의 눈에 띄는 편애, 애정은 아마도 환상을 품고 사는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2016년 영화부산 vol 18(통권 58호),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8월 8일 이 시대의 ‘존’들을 위하여, <프랭크> 이 영화는 프랭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존의 쓰디쓴 성 장서사이기도 하다. 
뉴스, 웹툰. 2016년 11월 29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3 아수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3 아수라
2014년 영화부산 vol 11(통권 51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10월 1일 Film Review – 이제 겨우 이야기의 시작 [고스트 메신저] 이 애니메이션은 영력을 가진 주인공 꼬마 ‘강림’이 영문 모를 장난감 하나를 떠맡게 되면서 시작한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4(통권 64호), 리뷰, 필름 리뷰. 2018년 1월 1일 친구는 언제나 낯선 사람들이다 영화는 항상 친구를 필요로 해왔다. ‘친구’라는 이름을 표방한 영화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 
2006 Summer (통권 18),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6년 7월 4일 강적 조민호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오우삼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강적’ 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