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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영화부산 vol 26(통권 66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7월 12일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그러나 아무나의 길 <판타스틱 우먼>

  • 글 ·
  • 작성일2021. 01. 21


나는 이 영화에 대한 평가를 여전히 유보하고 있다. 이 영화가 일으킨 파문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탓이다. 실제로 영화가 끝난 뒤 긴급하게 온몸을 휘감은 열광은 영화적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모두 특이하게 말하고 싶게 만들었고 과잉을 무릅쓰고서라도 옹호하고 긍정하게끔 만들었다. 아니, 혹시 이런 열광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성애자의 호사 취미는 아닐까,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이 이름 붙일 수 없는 존재를 영화적 이미지로, 이성애자들의 세계에 ‘선물’로 허락해준 영화에 그저 감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이름을 붙일 때 젠더적 이분법으로 규정하고 정체화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거울’에 제대로 비치지 않는 존재를 가까스로 카메라에 모시고 온 <판타스틱 우먼>은 어쩌면 ‘환상’이겠지만, 환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만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자신의 존재를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혹은 그녀를 혹은 ‘아무나’를 이 세계에 거주하도록, 비록 모욕과 비참이 난무하는 과정의 연속이지만, 허용해준 이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도덕과 규범으로 점철된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보기에 ‘마리나’는 처리할 길이 없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마련한 선물이 바로 ‘마리나’다. 사랑하는 남자와 생일을 보내고, 함께 여행을 떠날 생각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앞으로 펼쳐질 고통스런 시간을 예견한다고 해도 마리나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선택했을 것이다. 마리나는 오를란도와 있을 때만이 온전히 ‘그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늙고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오를란도를, 어떤 의미로 전혀 생산적이지 않는 남자를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자리와 좌표를 조직한다. 즉 마리나가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오를란도를 통해서 가능하다면 그녀에게 그의 부재는 세상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마리나를 지탱해주었던 힘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상실하고 만다.
 

사랑이 ‘기능’이 아니라면, 마리나의 오를란도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예술적인 것이며 생산과 관계없이 이루어낼 수 있는 관계의 양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산력’과 무관한 사랑이야말로 존재를 보살피고 진정한 의미에서 돌보는 방식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다. 삶의 지속이 생산의 문제보다 재생산에 가까울 때, 사랑의 지속은 재생산의 영역이며 이 영역이야말로 돈으로 지불되지 않지만, 영원히 애써야 할 노동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마리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 삶을 수렁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무상의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리나의 저 길은 아무도 가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거울에 아무리 비춰도 자신은 거울에 비친 그대로 남성이거나 여성일 수 없고, 경찰이 아무리 마리나에게 심문을 해도, 마리나는 그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다. ‘여동생’이 자신을 ‘언니’로 받아들여도, ‘마리나’는 사회적 의례 체계 속에서 사랑하는 대상인 오를란도를 ‘애도’할 기회를 제대로 할당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실한 대상을 충분히 애도할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에는 그러므로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거나 사랑이라는 허명을 과장되게 사용하는 것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기쁨을 누렸던 마리나에게 ‘애도’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이 사회적 규범성이라면, 이 규범적 형식으로부터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사랑’이 온전한 것일 리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마리나가 가고 있는 저 사랑의 길은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일 수밖에 없다. 소수자나 LGBTQ가 우리 삶 내부에 있음에도 여전히 지각되지 않고 있지만, 규범성 속에서 사랑을 수행하는 일상적 삶들에겐 그들의 사랑이 우리들 사랑을 지탱하는 원천이었음을 이제 받아들일 시점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마리나의 사랑이 특이한 것이라고 해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마리나가 걸어가고 있다고 해도, 그러한 길이 마리나에게만 허락된 것은 아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아무’가 나아가도 되는 길이다. 달리 말해, 이 영화가 나를 진동하게 한 것은 나 역시 그 ‘아무’의 편에서 지지하고 응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짧은 리뷰가 이성애자의 호사 취미가 되지 않는 것이리라 여기는 것도 바로 이런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꾸로 마리나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마리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도무지 쓸 수 없는 글이 바로 이 부족한 원고인 셈이다.
 

‘아무도’의 세계로부터 ‘아무나’의 길을 구성하고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무나’ 마리나의 사랑이 가능한 세계를 만드는 일은 거듭해서 파국으로 내몰리는 삶을 지탱하는 가능한 한 방식일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나’ 저 길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떠드는 그런 날. 눈에 강력하게 끼인 이항대립적인 백태가 사라지고 ‘아무나’와 분별없이 어울리는 그런 자리를 희구하는 일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김필남 영화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 하지만 매번 글쓰기의 고통 앞에서 좌절한다. 그래도 좋은 영화를 볼 때, 글을 쓰고 싶어진다. feel4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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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영화부산 vol 15(통권 55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9월 24일 기쁨 권하는 사회 [인사이드 아웃] ‘기쁨’과 ‘슬픔’이 함께 포옹하는 장면, 우리 안의 페르소나와 쉐도우가 대면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린 북 경계선의 사람들 내가 돈과 토니의 웃음을 마냥 행복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그린 북>의 세계에는 분명한 선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선들은 무수히 많은 형태로 영화 속에서 존재한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4(통권 54호), 리뷰, 오늘의 문예비평. 2015년 7월 1일 ‘지역’이라는 공포 [도가니]가 지역을 재현하는 방식 <도가니>는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과 법정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쉐들이 종합된,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Film Review- 클로즈업,신성과 접촉하는 영화의 방법[잔 다르크의 수난] 클로즈업, 신성과 접촉하는 영화의 방법 <잔다르크의 수난> 
2006 Summer (통권 18),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6년 7월 4일 강적 조민호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오우삼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강적’ 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7(통권 67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10월 21일 <변산>, 변산의 말맛 <변산>을 힘차게 껴안고 싶은 이유는 찰지게 맛있는 말들의 리듬, 똑떨어지는 그 말맛 때문이다.
2010 Winter (통권 36호), 리뷰, 필름 리뷰. 2010년 11월 11일 Review - 아버지의 세계로 귀환과 웃음의 약수터 양영철의 [수상한 이웃들]  <수상한 이웃들>이라는 한 개의 큰 퍼즐로 완성되는 구조다. 양영철 감독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단편 시나리오를 써내려 가다 장편으로 완성되었다는 제작 에피소드를 알려주었다.
2008 Spring (통권 25호), 특집기획. 2008년 3월 30일 [펀치 드렁크 러브] '존 브라이언'은 배리와 레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의 후반부에선
그들의 겉잡을 수 없는 사랑을 극적으로 잘 표현 해냈다.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11월 29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이야기 중의 이야기 <테일 오브 테일즈>]  ‘미’와 ‘추’란 대립적 개념이 환희와 비탄, 삶과 죽음의 역설적 공존만큼이나 미묘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음을 제시한다.
뉴스, 웹툰. 2016년 7월 12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4 배트맨 대 슈퍼맨 복면작가의 Movie Think #4 배트맨 대 슈퍼맨
뉴스, 웹툰. 2016년 10월 20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1 맨 인 더 다크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1 맨 인 더 다크_ 웹툰 

2008 Spring (통권 25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3월 30일 사랑도, 연애도, 그것도 [뜨거운 것이 좋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았던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가부장적 가족관을 뒤바꾸는 새로운 가족 개념과 여성성에 대한 접근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4(통권 44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2월 4일 범죄소년 (범죄)소년, (범죄)소녀를 만나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4(통권 44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2월 4일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우리시대 누구나 반달이 될 수 있다
2016년 영화부산 vol 16(통권 56호), 리뷰. 2016년 1월 4일 FILM REVIEW 용서는 어떻게 오는가 - 래빗 홀 사라지지는 않지만 ‘주머니 속의 돌처럼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된다’는 상태로 들어가는 시작점일 것이다. 치유는 그렇게 용서에서 온다.
2016년 영화부산 vol 16(통권 56호), 리뷰. 2016년 1월 4일 FILM REVIEW 단 한편의 시(詩) - 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목숨과 바꾼 미자의 시를 읽고 또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2007 Summer (통권 22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7년 6월 1일 이런 사랑도 있다 밀양 영화가 끝나고 나서 문득 느낀 사실이지만,시작 무렵에 신애를 비추던 햇살보다 마지막에 비추던 햇살이 더욱 부드럽고 눈부시게 느껴진 건 왜일까?
뉴스, OST & 맛집. 2016년 10월 19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그리고 세상은 이토록 고독하다] 영화 <아비정전 DAYS OF BEING WILD>을 들으며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10월 20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우리가 살고 있는 나쁜 나라 <자백>]  “적당히 해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뉴스, BFC 뉴스. 2016년 11월 3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비명조차 집어삼킨 악몽의 밤 <맨 인 더 다크>] 어둠의 심연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공포는 곧 베일에 싸인 맹인의 정체에 관한 호기심과 결부되어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고픈 도둑들의 심장을 옥죈다.
리뷰, FILM REVIEW. 2017년 2월 16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도착한 미래, 유예된 현재 <컨택트>]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자못 점진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을 빌어 서로의 존재를 탐문하려 하였던 지적생명체와의 조우는, 루이스가 외계종족으로부터 예언자이자 영매로서 선택받게 된 이 환영적 체험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2005 Summer (통권 14),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5년 7월 6일 연애의 목적 여자는 희망한다. 둘의 새 출발을.. 남자는 알았다. 자신이 제비가 아니라 진정으로 그녀에게 반하고 사랑하고 있음을..
2017년 영화부산 vol 23(통권 63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10월 17일 <택시운전사>를 보고 <꽃잎>을 떠올리다: 김만섭과 ‘우리들’ ‘광주’가 지닌 비극적 면모의 일부이겠지만. 여기서는 시각적 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 위안조차 불편하다.
2003 Winter (통권 8호), 리뷰. 2003년 12월18일 그 단순하고 순결한 복수의 칼에 대하여 올드보이 가장 영화적인 모티브인 ‘복수’가 온전히 박찬욱 감독의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2016년 영화부산 vol 17(통권 57호), 리뷰, FILM REVIEW. 2016년 4월 22일 상처받은 어린 넋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줘야 할 때 <귀향>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배우로든, 스탭으로든, 관객으로 든··· 영화에 참여해야 한다.”
뉴스, OST & 맛집. 2016년 6월 15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재능 있는 리플리메리카노] 영화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를 들으며
2008 Autumn (통권 27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8년 9월 26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빼앗긴 조국에 대한 한으로 황야를 무정부 상태인냥 누비고 다니는 세 남자의 보물찾기 과정에는 분명 조국을 잃은 슬픔과 자괴감이 깔려 있다. 
뉴스, 웹툰. 2016년 6월 28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3 컨저링2 복면작가의 Movie Think #3 컨저링2
2013년 영화부산 vol 04(통권 44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2월 4일 필름 소셜리즘 세계의 비참에 대한 영화의 사유
리뷰, 필름 리뷰. 2017년 2월 3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모두가 왕의 사람들 <더 킹>]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타깃을 잡고, 첩보를 기획하고, 적당한 기회에 터뜨리는 일’은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자 출세를 보장하는 지름길이었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7(통권 67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10월 21일 타인의 삶과 그 세계에 대한 이해 <소성리> 영화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소성리>는 그렇게 타인의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2017년 영화부산 vol 22(통권 62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7월 14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일즈맨>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과연 진실이냐고 되묻고 있을 뿐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4(통권 44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2월 4일 잊혀진 꿈의 동굴, 문성훈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소멸되지 않은 꿈의 역사 베르너 헤어조크 作
2007 Autumn (통권 23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7년 9월 1일 D- WAR 디워 한국 기술의 SF영화 D-War는 많은 시도와 실패의 흔적들이 여전히 보였지만 훌륭한 영화였고 그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2014년 영화부산 vol 08(통권 48호), 리뷰, 필름 리뷰. 2014년 1월 5일 Film Review 투기가 전위가 될 수는 없었을까? [잉투기] 영화를 보는 자와 영화의 연대에서 희미하게 나마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