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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영화부산 vol 29(통권 69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6월 3일

<레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 글 ·
  • 작성일2021. 01. 26



악기 조율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오고 세 여인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록 클럽 뒷문에 위치한 계단을 오른다. 카메라의 우아한 움직임 안에서 꿈결처럼 영화의 문을 여는 <레토>는 1980년대 초 구소련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록 클럽 안으로 우리의 시선을 견인해 간다. 이 숏의 몽환적인 움직임은 관객의 시선을 과거의 낯선 장소로 인도해 가는 많은 전기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도, 이상하게 무장해제된 듯 가슴이 설렌다. 라이브 하우스를 찾을 때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일찌감치 가슴이 쿵쾅대는 경험이 떠오르며 기분 좋은 기시감에 마음이 동한 것인가, 잠시 생각해 보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장면에선 모종의 결기가 느껴진다. 공연에 늦은 세 여인처럼, 빅토르 최(유태오 분)라는 불멸의 록스타가 탄생한 장소에 너무 늦게 도착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영화가 관객에게 동행을 요청하며 조심스러운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레토>는 빅토르 최와 그가 활동했던 레닌그라드 인디씬의 역사를 묘사하고는 있지만, 전기 영화라기보다는 동행의 영화이자 고백의 영화다. 빅토르 최의 노래가 민중가요로도 불리며 그가 시대의 영웅으로 추앙받기 전, 구소련 뉴웨이브의 선구자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불리기 전의 청춘 빅토르와 동료들의 찬란한 시간에 바쳐진 영화인 것이다. 그렇게 되살아난 그들의 시간 안에서 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휘청거리게 된다. 하지만 그 감응이 매끄러운 음악영화, 혹은 촉각적인 생기를 지닌 청춘영화로서의 성취에 대한 반응이냐 하면, 그것이 요체는 아닌 것 같다. 레닌그라드 록씬의 동료들이 보내는 해변의 바캉스 장면들은 숨 막힐 듯 아름답고 얼마간의 해방감마저 느껴지지만, 어딘가 청춘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아 손끝이 간질간질해진다. 마찬가지로 당시 레닌그라드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록 음악에 맞춰 인물들이 당대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저항하는 퍼포먼스(해설자가 등장해 환상임을 환기시켜주는)를 펼치거나, 애니메이션과 짝을 이뤄 각개의
완벽한 뮤직비디오를 구현하는 장면들은 재기 발랄해 보이지만 흥미롭지는 않다. 양식의 경계를 허물며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프레임에 현현해 내려는 시도가 새롭게 보이지는 않는 것이다.
 


이 영화에 진정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는 고요한 사내 때문이다. 빅토르의 멘토이자 친구인 마이크(로만 빌릭 분)란 사내. 그가 해변에서 처음 만난 빅토르의 노래 가사를 진중하게 읽어 내려갈 때, 사랑하는 여인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셰바움 분)와 빅토르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고도 부드러운 얼굴로 불안을 덮을 때, 둘의 마음을 헤아리고선 처연히 홀로 빗속을 거닐 때, 훗날 빅토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보리스에게 빅토르의 멘토 자리를 넘긴 후 조용히 스튜디오를 빠져나갈 때, 이 고요한 사내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품에 의식이 혼미해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턴 마이크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환상이며 낭만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애초에 <레토>는 나타샤의 회고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으니 그녀의 사랑과 기억이 영화의 중추가 되는 게 당연할 것이다. 중요한 건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또한 그들의 사랑과 그들의 시대에 한껏 빠져들어 영화에 빛과 숨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마이크가 빗속을 헤매고 집으로 돌아온 아침, 서서히 찾아든 햇빛 안에서 마이크와 나타샤가 서로를 달래주는 아름다운 장면은 감독이 가난하고 서러운 이들에게 보내는 마음의 현현인 것 같다. 그 절절한 마음의 동행이 있기에 나는 <레토>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눈물을 참기 힘들다.
 

빅토르의 사무치게 쓸쓸한 노래 <나무>가 레닌그라드 록 클럽에 울리고 있고, 클로즈업된 빅토르의 얼굴 옆으로 불꽃처럼 살다 간 그의 생몰연도가 조심스럽게 비쳤다 사라진다. 카메라는 멈추지 않고 관객석에 앉아있는 팬들과 동료들의 얼굴을 천천히 지나쳐 가며 마지막으로 공연장 한편에 서 있는 마이크와 나타샤의 얼굴에서 멈춘다. 마이크의 얼굴 옆으로 역시나 짧게 세상에 머물다 간 그의 생몰연도가 떠올랐다 사라지고 이내 곧 마이크도 공연장 뒤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나타샤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나타샤의 자리는 곧 우리의 자리이며 그녀의 얼굴이 곧 우리의 얼굴이다. 그렇게 영화는 군대, 알코올, 가난, 억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뮤지션으로서 생명도 짧았고, 오랫동안 생을 지탱할 수조차 없었던 레닌그라드의 많은 뮤지션들에게 소박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영화처럼 용감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낭만이어도 좋고, 감상이어도 좋겠다며 흥청거리는 <레토>는 가끔 소름 끼치게 정교한 영화 형식을 경유해 음악의 속성에 닿아 가는 용감한 영화다.
 

FILMBUSAN_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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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영화부산 vol 15(통권 55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9월 24일 기쁨 권하는 사회 [인사이드 아웃] ‘기쁨’과 ‘슬픔’이 함께 포옹하는 장면, 우리 안의 페르소나와 쉐도우가 대면하는 장면일 것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10월 5일 Film Review 켜켜이 쌓인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카페 뤼미에르>, 필름리뷰 아마도 요코는 엄마가 될 것이다. 그리고 프레임을 뚫고 나간 열차는 멈추지 않고 종으로 횡으로 시간을 질러갈 것이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6(통권 66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7월 12일 <소공녀>, 행복하냐고 묻지 마라 이 여행의 시작을 미소가 담배와 위스키를 선택했기 때문이라 하지 마라. 
뉴스, OST & 맛집. 2016년 6월 15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재능 있는 리플리메리카노] 영화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를 들으며
2018년 영화부산 vol 27(통권 67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10월 21일 <변산>, 변산의 말맛 <변산>을 힘차게 껴안고 싶은 이유는 찰지게 맛있는 말들의 리듬, 똑떨어지는 그 말맛 때문이다.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7월 7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우리가 모르는 셜록 홈즈 <미스터 홈즈>] 아마도 셜록 홈즈 만큼이나 대중들로부터 오랜 기간 사랑받은 가공의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는 자신이
뉴스, 웹툰. 2016년 12월 13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4 신비한 동물사전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4 신비한 동물사전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12월 15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모래 위에 새겨진 폭력의 역사 <로스트 인 더스트>] 빈곤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삶을 물려주고픈 아버지들의 바람은 그들의 땅에 스민 탐욕과 살육의 역사마저 자식세대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며 끊이지 않는 폭력의 연대기를 이루었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8(통권 68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1월 15일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 기이한 여행 첫 쇼트와 마지막 쇼트가 서로 꼬리를 물려 순환하는 구조를 통해 장률은 이 여행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귀띔한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그곳에 상처를, 남기다 <꽃섬> 슬픔에 공명하는 자기 자신을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타인의 시선이 슬픔을 대신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외로운지도 모른다.
리뷰, 필름 리뷰. 2016년 9월 22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옛날 옛적, 마녀가 살았던 그곳 <더 위치>] 설명할 수 없는 재앙의 근원에 관한 마땅한 원인을 찾거나, 공동체 내부의 결속을 공고히 하고자 으레 내세우는 방어체계란 곧 악마화된 외부의 적을 향한 강고한 배척이라 할 수 있다.
2019년 영화부산 vol 29(통권 69호), 리뷰, FILM REVIEW. 2019년 6월 3일 <레토>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레토>는 가끔 소름 끼치게 정교한 영화 형식을 경유해 음악의 속성에 닿아 가는 용감한 영화다.
2017년 영화부산 vol 20(통권 60호), 리뷰, FILM REVIEW. 2016년 12월 28일 겨울을 나는 방법 <러브레터> 영화를 본 이후 나의 쓸쓸하던 마음 역시 구원되었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6(통권 66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7월 12일 찰나의 순간, 달라지는 세계 <클레어의 카메라>  영화는 이제 찰나에도 펼쳐질 수 있는 세계의 깊은 심도를 제시한다. 아득하고 신비로운 세계로의 확장이다.
2015년 영화부산 vol 12(통권 52호), 리뷰, 필름 리뷰. 2015년 1월 1일 행복에 관하여 [황금시대]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길 원하고 만들어가야 한다.
뉴스, OST & 맛집. 2017년 2월 15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우리 각자의 라라랜드] 데미언 채즐의 <라라랜드 La La Land>를 들으며
2003 Winter (통권 8호), 리뷰. 2003년 12월18일 그 단순하고 순결한 복수의 칼에 대하여 올드보이 가장 영화적인 모티브인 ‘복수’가 온전히 박찬욱 감독의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2002 Autumn (통권 3호), 리뷰. 2002년 9월 26일 내가 앵글에 담는 부산의 공간 부산의 공간에 대한 이런저런 잡담을 들으며 느끼는 아쉬움으로 내가 아직 부산을 아낀다는 걸 느끼듯이???
2009 Spring (통권 29호), 뉴스. 2009년 3월 19일 봄날의 나른한 단상 요 며칠사이 봄비가 제법 때맞춰 수분공급을 잘하고 있다.
뉴스, OST & 맛집. 2016년 7월 20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우산 아래 숨은 사랑의 노래들] 영화 <쉘부르의 우산 Les Parapluies De Cherbourg>을 들으며
뉴스, OST & 맛집. 2016년 10월 5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타인의 삶에 귀를 기울이는 일] 영화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을 들으며
2003 Spring (통권 5호), 리뷰. 2003년 4월23일 밀애 관능과 상혼이 빚어낸 찬란한 여성성, 밀애
2018년 영화부산 vol 24(통권 64호), 리뷰, 필름 리뷰. 2018년 1월 1일 망각의 정치학, 기억의 영화 시학 “세계는 사라졌다, 내가 널 데려다 줘야 한다.(The world is gone, I must carry you.)” 이렇게 영화는 시작된다. 
뉴스, 웹툰. 2016년 12월 21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5 판도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5 판도라
2006 Summer (통권 18),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6년 7월 4일 강적 조민호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 오우삼에게 도전장을 내밀어 ‘강적’ 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스토커 핏줄론(論)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 엄마의 블라우스, 아빠의 벨트, 삼촌이 사준 구두. 나는 온전히 나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그녀는 도대체 누구인가.
리뷰, OST & 맛집. 2017년 1월 5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다시, 새로운 희망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로그 원 부대의 장렬한 최후를 바라본 라더스 제독의 나지막한 읊조림. 그들의 포스는 곧 저버릴 수 없는 대의와 희망이었다.
뉴스, OST & 맛집. 2017년 1월 18일 오성은의 막귀 씨네마 [도시의 마지막 구원자] 그 복잡한 지옥도 속에서 색소폰은 여전히 귓가를 헤맨다. 이 밤을 서성이는 고독한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낮은 음성으로.
뉴스, 웹툰. 2017년 1월 17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6 매그니피센트 7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6 매그니피센트 7 _웹툰
2017년 영화부산 vol 23(통권 63호), 리뷰, FILM REVIEW. 2017년 10월 17일 <택시운전사>를 보고 <꽃잎>을 떠올리다: 김만섭과 ‘우리들’ ‘광주’가 지닌 비극적 면모의 일부이겠지만. 여기서는 시각적 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 위안조차 불편하다.
필름리뷰 - 부산평론가 4인 영화 인터뷰 바캉스로서의 영화 기욤 브락의 영화는 에릭 로메르나 자크 로지에와 같은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의 영화와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바캉스, 젊음, 연애 사건이라는 소재가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세 사람의 영화를 특징짓는 공통점이다. 물론 영화의 자유로움이 소재의 차원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신인 혹은 비전문 배우의 기용, 현장에서의 우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함, (특히 에릭 로메르를 상기시키는) 배우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캐릭터 구축 등의 영화 제작 방법이 영화에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을 불어넣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2007 Autumn (통권 23호), 리뷰, 나도 영화 평론가. 2007년 9월 1일 D- WAR 디워 한국 기술의 SF영화 D-War는 많은 시도와 실패의 흔적들이 여전히 보였지만 훌륭한 영화였고 그 속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뉴스, 웹툰. 2016년 7월 26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5 부산행 복면작가의 Movie Think #5 부산행
2002 Summer (통권 2호), 리뷰. 2002년 7월 26일 영화다시보기- 불교의 시각에서 본 영화 <달마야 놀자>편 조폭과 불교? 얼핏 생각해도 너무나 황당한 이 결합은 조폭영화 장르 특유의 재미를 불교적 코드를 도입해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 영화부산 vol 25(통권 65호), 리뷰, FILM REVIEW. 2018년 4월 4일 <굿타임> : 움직임을 의탁할 인물 <굿타임>은 자신의 움직임을 의탁할 대상을 찾는 듯 닉과 코니를 오가는 동역학에 대한 영화다.
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리뷰, 필름 리뷰. 2013년 7월 6일 Film Review 환상적이야! <미드나잇 인 파리> 첫 장면부터 길에 대한 감독의 눈에 띄는 편애, 애정은 아마도 환상을 품고 사는 삶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뉴스, 웹툰. 2016년 11월 16일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2 더 랍스터 복면작가의 Movie Think #12 더 랍스터
2017년 영화부산 vol 21(통권 61호), 리뷰. FILM REVIEW.2017년 4월 26일 타자의 시선에 갇힌 사람들 <녹터널 애니멀스> 19년 전 헤어진 전남편에게서 소설 한 권이 도착한다. ‘녹터널 애니멀스’, 불면증에 시달리던 수잔의 별명을 제목으로 붙인 에드워드는 이 소설을 그녀에게 바쳤다. 톰 포드 감독의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Nocturnal Animals>(2017)는 소설을 받아든 수잔의 감정적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뉴스, 필름 리뷰. 2016년 11월 17일 문성훈의 리와인드 [이상한 나라의 마이클 무어 <다음 침공은 어디?>] 마이클 무어가 미국으로 가져가려 한 꽃은 이렇듯 인간과 역사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