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현호 <헤어질 결심> 제작부장

사진 모호필름, CJ ENM 제공

경계를 넘나들며 몰입감을 선사하는 스토리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낀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게 특별한 호기심과 의외의 동질감을 느낀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다. 박찬욱 감독의 4번째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감독상 수상작으로 서스펜스와 멜로를 수시로 오가기 때문에 ‘100% 수사 드라마와 100% 로맨스 영화’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장르적 균형감이 돋보인다. 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공간의 변화, 의심과 관심을 오가는 관계의 변화, 수사 과정에서 달라지는 진실의 변화는 관객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해준과 서래 사이의 복잡 미묘한 감정은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서래는 속을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해준은 물론 관객까지 혼란에 빠뜨리며 긴장감을 형성한다.

생활감 드러나는 부산의 다양한 공간에서 로케이션

<헤어질 결심>의 배경은 바다와 산이라는 자연의 공간, 주요 인물들이 사는 도심 속 일상의 공간이 공존한다. 그래서 제작팀은 시나리오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부산을 촬영 장소로 떠올렸다. 실제로 전국의 로케이션 자료를 검토해 보았지만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도 부산에 로케이션 후보지가 눈에 띄게 많았다. 박찬욱 감독은 각종 자료를 살펴본 뒤 최종적으로 부산의 후보지를 촬영 장소로 선택했고 로케이션 담당팀이 부산으로 내려가 업무를 시작했다.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부산시 16개 구·군 중 14개 구·군에서 총 23곳 44회 차 촬영을 진행했다. 영화 속 소품으로 쓰였던 사진을 촬영한 장소까지 포함하면 정확히 25곳이다. 한 지역으로 로케이션이 묶일수록 예산과 촬영 스케줄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팀은 부산의 아파트, 전원주택, 이층집, 민박집 등 생활감이 드러나는 다양한 공간을 두루 찾아다니며 꼼꼼히 살필 수 있었다.

서래와 닮은 공간, 서구 대동송도맨션

영화 속 공간은 캐릭터의 성격을 대변한다. 그렇기에 로케이션은 캐릭터 구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서래가 사는 아파트는 형사 해준이 서래를 감시하는 공간이자 서래의 숨겨져 있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핵심 장면을 촬영하는 공간인 만큼 서래를 감시하는 해준의 동선, 위치 등이 스토리보드 속 구상과 완벽히 일치해야 했다.

제작팀은 바다가 보이면서 영화 내용과 부합되는 공간을 찾기 위해 부산의 아파트, 빌라, 고택 등을 살펴보았다. 만족할 만한 공간을 쉽게 만나지 못하던 중 극적으로 대동송도맨션을 찾았다. 대동송도맨션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해 있고 아파트의 공간 배치도 스토리보드 속 인물의 동선과 일치했다. 한 번도 드라마, 영화 촬영을 한 적 없는 새로운 로케이션 공간이란 점은 제작팀이 더욱 욕심 내 촬영을 준비하게 만들었고 관리사무소와 입주민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촬영에 도움을 줘 순조롭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도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가 서래의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곳을 촬영지로 최종 확정했다.

긴박했던 추격신을 담은 동구 차이나타운과 초원아파트

행인과 상인, 주민들로 복잡한 ‘거리’는 섭외와 촬영이 어려운 로케이션 장소 중 하나다. 제작팀은 헌팅 단계에서부터 어느 거리든 촬영이 쉽지 않을 테니 촬영 여건은 차치하고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최적의 장소를 고르자고 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이 최종 확정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차이나타운은 영화 <올드보이>(2003) 촬영지로 박찬욱 감독과 제작팀 모두에게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멋있는 분위기의 거리였지만 촬영을 앞두고는 ‘현장 통제가 잘 이뤄질까’ 겁을 먹기도 했다. 다행히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범인을 쫓아 달리는 배우 앞에 길게 펼쳐진 화려한 거리를 담을 수 있었다.

차이나타운에서 벌어진 추격과 연결되는 장면은 초원아파트에서 찍었다. 시나리오에 써져 있던 ‘영원처럼 높게 느껴지는 계단’. 제작팀은 이를 구현하기 위해 초원아파트로 향했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라 촬영 전부터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초원아파트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길은 험난했다. 현장으로 진입하는 길은 계단뿐이었고 촬영 장비를 차량으로 이동한 뒤 계단 상·하단을 통해 진입시켰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사용하는 조명 장비는 사람이 직접 가지고 계단으로 올라서 운반해야 했다. 다행히 입주민 대표의 협조를 얻어 장비를 옮겼지만, 대형 조명 장비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하나씩 밧줄로 묶어 옥상으로 옮겨야 했다.(당시 현장을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영화 <레미제라블>의 오프닝이 연상될 정도다.) 여러모로 어렵게 진행된 촬영이었다. 그러나 초원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본 부산항대교와 항구의 풍광은 모든 우여곡절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기장 도예촌, 금정산,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의 촬영

영화 속 사건이 시작되는, 산을 배경으로 한 장면은 촬영 전부터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수많은 특수효과(Visual Effects, VFX)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제작팀과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기장 도예촌을 암벽 오픈세트 부지로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다양한 일을 겪었고 촬영하면서 중간 중간 비까지 내려 암벽 세트를 말리느라 힘들었다. 금정산 촬영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남겼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해가 뜰 때까지 촬영하느라 모두 녹초가 됐다. 특히 발전차에 의지해 작업해야 했던 조명팀과 특수효과팀이 애를 먹었다. 돌이켜보면 <헤어질 결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촬영이었다.

야외 촬영에 비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는 실내 촬영 역시 당시에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 많은 부분을 진행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매순간 방역에 힘써야 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해야 하는 주요 장면이었기에 스태프 모두가 고도로 집중해야 했다. 그럼에도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배우와 스태프가 편히 쉬고 재정비할 수 있는 최적의 촬영 여건을 갖춘 세트장이었다. 편안함 덕이었는지 부산영화촬영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은 지금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부산영상위원회 도움 받아 해결한 각종 행정 절차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부터 해준이 근무하는 경찰서를 어느 곳에, 어떻게 만들지가 문제였다. 세트장 촬영이 아니었기 때문에 로케이션 환경이 좋아야 했고 스케줄을 잡는 데 유리하며 경찰서 내·외부를 함께 찍을 수 있어야 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하던 중 1960년대 지어져 근대 건축양식이 잘 보존된 구)한국은행 부산본부를 알게 됐고 만장일치 촬영지로 내정했다. 그러나 허가와 안정성 문제를 풀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피디와 제작팀, 미술팀이 부산을 몇 번 씩 오가며 안전성 문제를 점검했고 촬영 일정을 수정하며 다방면으로 로케이션을 준비했다.

‘문화재위원회와의 구조물 설치 관련 심의 준비’는 여러 기관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촬영 준비, 복구 작업, 안전 및 방역에 관한 내용을 담은 PT’를 거치고 난 뒤에야 최종 사용허가를 받았다. 로케이션 관련 행정, 허가 문제는 유관기관의 도움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부산영상위원회가 제시해준 체계적인 프로세스에 따라 복잡한 행정 절차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수고해주신 부산영상위원회 박준우 담당자에게 감사를 전한다. 뿐만 아니라 로케이션 당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부산영상위원회 관계자분들, 따스한 말로 스태프를 응원해준 영화도시 부산시민들에게 감사 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