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이 완연한 어느날, 이렇게 화창한 날씨와 ‘돼지국밥’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일제시대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싼 값으로 여러 사람의 끼니를 해결하고자 만들어 먹던 음식이 돼지국밥이라니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하다. 다른 경남 지역에서도 먹는 돼지국밥이 유난히 부산의 것으로 유명한 이유는 피난 생활을 하면서 부산에서 맛본 사람들이 많아서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오늘 꼭 먹어봐야 할 것 같다. 날씨도 따뜻하고 먹을 것이 풍족하여 그 옛날에 비해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지금，돼지국밥은 우리에게 어떤 맛을 전해주고 있을까.
 

항상 지나면서 보던 '쌍둥이 돼지국밥'은 문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한겨울 저녁，밖에서 덜덜 떨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서 먹고 싶은 국밥이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걸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언젠간 꼭 가보고 싶다고 작심했던 듯 하다.
 

12시 전에 가야 줄 서지 않을 거라는 강한 열의로 11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간에 도착한 식당 안은 다행히 빈 자리가 눈에 띄었다. 이 집에서는 꼭 먹어 봐야 한다는 수육백반과 돼지국밥을 서둘러 주문하고 주위를 둘러됐다.
 

돼지국밥 & 데이트<여: 김정현，남: 정희철dialogue>
 

남: 돼지국밥은보통 여자들은 싫어한다고 그러는데 여긴 여자 손님들 많네~
 

저기 혼자 먹으러 온 여자도 있고，와~ 멋진데!
 

여: 난 돼지국밥, 선지국밥, 내장국밥등등 국밥이란 국밥은 다 좋아하지 물론 싫어하는 음식도 별로 없지만~므훗
 

남: 내가 만난 여자들도 다들 돼지국밥 좋아했었지...
 

여: 데이트 할 때 돼지국밥 먹으러 왔다고? 난 데이트 하면서 돼지국밥을 먹은 적은 한번도 없는데. 남녀가 만나서 낭만적으로 나눌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 않나?
 

남: 난 아니야. 내 경우는 만난지 얼마 안 된 여자랑 거리감을 좁혀주는 가장 좋은 음식중에 하나가 돼지국밥이야. 물론 맛있는 곳이어야 하지만.
 

여: 난 남자랑 한번도 돼지국밥을 먹은 적이 없어. 물론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한다고 자랑한 적도 없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4명의 아가씨! 막 공사장에서 일을 끝낸 인부들, 아이 둘을 대동한 부부，그리고 빠른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은 직장인들까지 다양하다.
 

돼지국밥은 우리에게 정말 익숙한 밥같은 존재인가 보다. ‘그’ 에게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매개체로서 ‘그녀’ 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음식이니 말이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이 곳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수육백반! 왜 그리 유명한가 했더니 첫 눈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알콜 램프로 계속 데워지는 ‘시스템 위에 얹혀진 수육은 고기의 생김새가 여느 집과는 다르다 가만히 보니 항정살이고 양도 정말 많다. 접시위에 베여 있는 국물은 고기를 삶은 국물 같은데 기름기가 전혀 없고 뽀얗기까지 하다. 빨리 한 점 집어 먹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사진 찍는 시간을 겨우 기다렸다. 한 점 입에 넣어본다. 음.. .!

살코기 사이에 촘촘히 박혀 있는 지방은 담백하고 졸깃한 항정살 수욱 특유의 맛을 일품으로 만들어 준다. 다음 한 점은 이 집만의 특별한 고추겨자장에 찍어 먹어 본다. 또 다른 맛이 입안에 맴돈다 뭐랄까. 담백하고 구수한 기본기에 악센트가 첨가된 느낌이다. 그냥 먹을 때와는 또 다른，맵삭하고 달락한 장맛이 입안을 점령한다. 6천원의 수육백반은 여기를 찾는 모든 손님들이 대접받는 기분을 한껏 살려줌에 틀림없다.

허겁지겁 수육 몇 점으로 급한 맘을 달래고 국밥 국물로 수저를 돌렸다 음.. 일단 색깔부터가 너무나 하얀빛이다 맛을보니 그 빛깔답게 소 곰탕 국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만큼 깊은 맛이 우러난다. 돼지국밥의 간은 보통 새우젓이나 반찬으로 나온 정구지(부추) 무침으로 맞추는데 기호에 파라 막장이나 고기용 간장을 사용해도 좋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아무 간 없이 이 집만의 국물맛을 충분히 음미해 보기로한다.

쌍둥이 돼지국밥이 하얗고，구수한 깊은 국물 맛이 특징이라면 양안국밥은 깊으면서도 입안에서 끈적이지 않는 육수의 깔끔함이 특징이다. 이 집 국물맛은 함께 뿌려 나오는 양념장이 그 비밀인데, 앙파, 마늘 등등에 갖은 양념을 해 놓고 국밥 나오기 전에 바로 뿌려 나오는 양념장은 자칫 텁텁해 질 수 있는 돼지국밥을 깔끔하고 칼칼하게 유지시켜 준다.

양산국밥의 수육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지방과 살코기가 반반 섞인 삼겹살 수육이다. 기름기가 없는 담백한 상태로 접시에 담아 나오는 수육 접시는 깔끔함이 베여 있다. 수육 곳곳에 오돌뼈가 박혀 있어 그 씹는 재미도 별미이다. 거기다가 집에서 만든 순대와 내장도 같이 내오는데，더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괜찮다는 아줌마의 넉넉한 미소가 편안함을 더 해준다. 양산국밥은 생긴지 얼마 안된, 국밥집 치고는 유별나게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일 때문에 그 근처를 맴돌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 별로 아는데도 없고 해서 그냥 들어가본 곳이었는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쌍둥이 돼지국밥과는 달리 그 유명세가 아직 널리 퍼지지 않고 넓은 방까지 있으니 어머니들의 계모임에도 딱인 듯 하다. 이 정도면 한번에 영화팀 40~50명은 거뜬히 해치울수 있을 것이다.

어느 음식점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잘되는 국밥집은 사람이 많고 음식이 빨리 나온다고 한다. 쌍둥이 돼지국밥과 양산국밥 두 곳 모두 이 두가지를 충족시키며 나름의 특징적인 맛을- 경험할수 있는 곳이다. 그 옛날 배고픈 시절을 함께 지나오며 지금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이 음식은 단돈 4천원 (돼지국밥)，6천원(수육백반)으로 푸짐함과 넉넉함을 선사해준다. 거기다가 돼지고기 뼈는 쇠고기보다 칼슘 함량이 더 많아 골다공증이나 디스크에도 좋다고 하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강추, 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수한 국물에 기름기 쫙 빠진 맛난 돼지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먹고 싶다면 부산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돼지국밥집을 찾으시라! 그 날 내내 몸과 마음은 포만감으로 가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