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댐 모텔-정신분석>


 

정신분석은 욕망을 댐에 갇힌 물에 비유한다. 상류로부터 물은 계속 유입된다. 비가 오는지 여부에 따라 유입되는 양은 다르겠지만 물은 쉬지 않고 유입된다. 물은 방출되어야 한다. 물은 댐의 수문을 열어 둠으로써 정상적으로 방출될 수 있다. 만약 수문을 어는 정도 이하로 열어 두면 유입량에 비해 방출량이 너무 적게 된다. 그러면 물은 계속 쌓이게 되고 결국 댐위로 넘치게 된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방출이다.
 

성적 욕망은 계속 쌓이며 이것은 성교와 같은 직접적인 방식이나, 성적인 것을 다룬 예술 작품 창작이나 감상처럼 간접적인 방식으로 방출되어야 한다. 쌓인 성적욕망이 방출되지 못하면 결국 신경증으로 표출된다는 것이 정신분석의 설명이다. 신경증은 댐이 넘치는 것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댐 모델은 폭력성 또는 공격성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공격성은 댐의 물처럼 쌓인다. 공격성은 배출되어야 한다. 몸싸움을 벌이든, 말싸움을 하든, 공격성을 담은 작품을 창작하거나 감성하든 말이다. 이런 모델에 따르면 폭력물을 보는 것은 공격성 방출에 도움이 된다. ‘댐에 갇힌’ 공격성이 줄어들면 사람은 덜 공격적으로 바뀔 것이다. 따라서 폭력물을 보는 사람은 덜 공격적으로 바뀔 것이다. 왜냐하면 폭력물을 통해 공격성의 대리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폭력물을 감상한 피시험자들은 폭력성이 감소하기는커녕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폭력으로 가득 찬 영화를 보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실제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믿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화한 메커니즘에 따라 스스로 더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마초 문화 가설의 설명이다.
 

- ‘폭력물과 폭력설’ 중 –
 

스릴러물 극대화법에 의해, 스릴러 영화는 필히 오밤중에 감상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즐기려면 나 홀로 유유히 극장 안을 빠져나올 수 있는 조금 큰 간도 준비해야 함이 마땅한데… 얼마 전 조금 늦게 표를 끊은 탓에 컴컴한 극장 안을 더듬거리며 “뭐 그리 대단한 영화라고 온 장안이 이리도 소란스럽단 말인가!”하며 내심 어디 얼마나… 하는 마음으로 아무런 준비없이 이 영화를 만나러 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영화가 끝나고 거리를 나서는 순간, 소위 벌건 대낮 쨍쨍한 태양아래 여과 없이 드러나는 내안에 존재하는 진부함에 당황스러움은 그렇다 치고 평소 없던 울렁증과 더불어 나흥진 감독의 의도래로 한 3일 내내 대낮도 무섭기는 난생처음 이었다.
 

영화<검은집>의 포스터 중 하나는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공포의 주체인 <검은집>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다. 태양은 티없이 따사롭게 빛나고 하늘마저 높고 푸르다. 벌건 대낮 도시 한복판엣 벌어지는 연쇄살인처럼 불가능한 상상이 현실로 다가올 때 우리는 공포에 끌려 다니게 된다.

영화를 통해 구역질과 찝찝함을 느끼기란… 아! 정말 이른 봄 내 주위는 온통 꽃들로 가득 찼는데 나는 이토록 봄기운을 간절해 하고 있으니… 가히 영화의 마력 아닌가!
 

지난 겨울과 울해 봄 사이에도 여지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제 사건자체가 아니라 사건의 규모이다. 자연스레 어느 포털 사이트의 영화홍보성 문구가 떠오른다. “상상하지 마라~ 상상 그 이상의 것이다.” 그랬듯 사건들은 내 상상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어 마치 한 편의 영화같이 전개되었다. 태안 기름 유출사건을 비롯, 숭례문 방화사건 인양초등학생 사건 등등…
 

사건은 점점 진화하고 스팩타클을 가지며 삶과 어러한 스팩타클의 알레고리는 진정한 분노가 아닌 온전하지 못한 평화를 야기시키며 영화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영화가 혼돈을 만들고 모두 부정하게 하며,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하는 점이다. 그리하여 모순과 적대 속에 살아가는 인류는 마치 투쟁하는 주체만 있는 듯하다.
 

영화 같은 현실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현실 같은 영화가 400만의 고지를 넘어 2008년 관객동원 1위에 등극하며 종횡무진 승승장구하고 있다. 어려운 한국영화 현실에 불을 지피고 활활 타오르고 있으니, 더 없이 반갑고 소중하다하겠다. 허나, 한편으론 우리 여화 역사상 일찍이 이런 장르의 영화를 힘들어 했었고, 호언장담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18세란 나이 제한에다 소비주도층인 여성들이 꺼리는 장르이며, 걸림돌이 한 두 개가 아닌 상황이었건만, <추격자>에 그토록 진지하게 달구어지는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운지 의문이 든다. “진정한 자유는 필연성과 겹친다. 전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군인처럼 안전한 거리에서 선택하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라는 말과 연결되는 삶에 있어 스치듯 주어지는 자유… 흔히 내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좀 나쁜 놈과 아주 나쁜 놈, 변하는 인간과 절대 변하지 않는 인간 사이에서의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그런 생각들…
 

잘 만든 거 안다. 이런 영화 꼭 필요하고, 사실 개인적으로 너무 내 타입이다.
 

러닝타임 내내 견디기 힘들어 두어 번 눈도 질끔 감아도 보고, 속으로 급 낮은 욕도 버럭 내질러 가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 앉으며 궁시렁 거린 건 사실이지만, 나도 보는 눈은 있으니까 혼자 딴지 걸 건 사실 별로 없어 딱히 뭐라 할 말은 없다. 진짜하고 싶은 말은, 위에 잔뜩 늘어놓은 바와 같이 폭력과 폭력성에 관한 가설들에 의해… 마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점점 더 큰 사건들을 대담하고 능숙하게 받아들이고, 익숙해져가는 불감증과, 기억상실증에 대한 당연한 ‘노파심’때문이다. 부디 현실이 아닌 영화의 스팩터클로만 만족하고 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잘 전달되기를…
 

그나저나, 영화<추격자>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고수하는 직업의식, 경쟁의식 또한 투철한 나는 또 다른 이유로 발끈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름 아닌, 촬영장소 때문이다. 대부분 로케이션촬영이 주류이며 세트촬영은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건만, 그토록 눈부신 골목길은 어디 서울에만 있었다던가! 하는 것이 안타깝다 못해 발끈한 생각이 든다.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그리도 긴 세월이었건만 어찌 길이란 길, 죄다 서울서만 찜하시고 하드보일, 액션 느와르의 명소인 부산에선 석재소 장면과 병원씬만 찍으셨단 말인가!..
 

아직은 부산을 잘 모르심이 틀림이 없다. 이 점에 있어서는 2박3일 장르별로 나홍진 감독님을 독대해야 할 듯하다. 이 장르로 치자면 원조 급인데 말이다. 영화 <추격자>는 부산 올로케 충분했었다. 안타깝지만 내심 <추격자> 2탄이 기획 되기를 잔뜩 기대할 뿐이다.
 

속도와 조급함의 경계에서 봄은 벌써 와 버렸다.
 

너무 빨리 고지를 점령한 탓에 한국여화의 위기도 꽃 봄과 함께 찾아왔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떠오른다. 생각보다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온 두 여화.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의 결실이 한국 영화산업의 막힌 혈관을 제대로 뚫어 줄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다들 어렵겠지만 진정한 영웅이 되기 위한 추격전은 지금부터가 아닌가 한다. 늘 그렇듯 ‘좋은 시나리오는 제작사가 알아보고,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이 알아 모신다’는 정석을 다시 한번 되뇌이며, 나는 나대로의 입장에서 허리띠를 졸라맨다.
 

춘(春)3월’ 좋은 날을 골라 법정스님이 즐겨 가신다는 남도일대 꽃구경이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섬진강가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를 가리키며 “꽃 멀미가 난다”고 하셨다는 그 말을 올 해는 직접 가서 꼭 경험해보고 싶다.
 

생에 있어 가장 심한 멀미를 예고하는 우리 영화를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