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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Summer (통권 26호), 뉴스, OST & 맛집. 2008년 7월 29일

가야동 가야밀면 VS 사직동 주문진막국수

글 ·
작성일2020. 12. 01

지난호 돼지국밥에 이어 밀면도 부산의 향토음식이다. 한국전쟁 당시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 중，이북 출신의 사람들이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먹고 싶었으나 메밀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미군 구호품으로 구하기 쉽던 밀가루로 면을 만들어 먹기 시작 했고，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음식이 바로 밀면이라고 한다. 요즘의 밀면은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 감자 전분 등으로 만들어진 면을 사용한다. 그 기원이야 어찌되었든 중요한 것은 밀면이야 말로 부산의 여름 더위를 식혀줄 진정한 강자 중에 강자라는 사실이 아닐까?

40년 전통의 ‘가야 밀면’ 집은 의외로 찾아가기 힘든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동의대 지하철역 5번 출구 앞，바로 보이는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서자 나지 막한 담벼락에 '가야 밀면 가는 길' 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당연히 있을 거라 여겼던 현대식 큰 간판은 보이지 않고 무광 대리석에 명조체로 파여진 ‘가야 밀면’ 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왠지 고풍스럽다는 느낌마저 들게하는 이 집의 첫 인상은 여기가 정말 '가야 밀면'이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킨 가야동의 원조 음식점이구나，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입구에 들어서자 ‘코인’을 사라고 한다. 물밀면，비빔밀면은 4천원짜리 빨간색 코인을 곱빼기는 5천원, 사리 코인도 있는데 1천원이다. 보통 큰 냉면집이 선불이라는 건 익숙한데 이런 코인 제도는 처음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아주머니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만 쉽지 않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무리 불러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아주머니가 야속하여 이번에 마음먹고 크게 불러본다. “아줌마~~ 여기 주문요!”그러자 돌아오는 대답은 "있어봐~ 좀 치워 놔야 주문을 받지!" 머쓱해져 포기 하고 앉아 있으려니 그제야 아주머니가 와서 코인을 챙겨간다. 물인지 비빔인지만 확인하면 부가설명은 더 필요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변의 다른 손님들은 코인을 가져가기 좋도록 테이블 옆에 두고 그냥 앉아 있었구나 아~ 그제야 손님 많은 여름철，이 '코인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경제성을 발휘하는지 알겠다. 우리는 괜히 초보 손님 티 내면서 아주머니를 목청껏 불렀던 것이다.

드디어 밀면이 나온다. 커다란 쟁반에 5~6개가 포개진 밀면 그릇들은 비슷한 시기에 주문한 테이블 별로 물, 비빔, 곱빼기로 구분해서 나눠진다. 기름기가 동동 떠 있는 국물은 먼저 마셔야겠다고 결심하게 할 만큼 고소해 보이고 면 위에 얹혀진 수육 두 점은 다른 집 보다 유난히 하얗고 더 크다. 빨간 다대기는 짜지 않을까 걱정 될 만큼 넉넉하여 우선 살짝 덜어 낸다. 요청하지 않아도 테이블 각각에 배급되는 가위로 면을 4번 잘라내고, 열심히 저어 섞는다. 역시 국물은 참기름 맛이 향긋하고 고소하게 입안에 퍼지는 것이 식욕을 자극 시킨다. 가위로 적당히 잘라 냈던 면발은 쫄면 냉면보다는 부드럽게 끊어지지만 씹는 맛은 다른 면들 못지 않게 쫄깃하고 오동통하다. 다대기는 생각보다 맵거나 짜지 않아 덜어낸 것을 다시 넣는다. 살짝 맛을 보니 퍽퍽한 고추장뿐만 아니라 가볍고 상큼한 것이 무를 갈아 넣었거나 다른 시원한 야채나 과일이 첨가된 듯 하다. 국물과 면을 섭렵한 다음，수육 차례이다. 커다랗고 하얀 살코기 덩어리가 퍽퍽할 것 같았던 수욕은 상큼한 다대기 국물에 듬뿍 적셔져 색다른 부드러움과 씹는 질감까지 선사한다.

지금까지 먹어본 경험에 따르면 밀면은 냉면보다는 확실히 그 양이 넉넉하다. 배고플 때 냉면 한그릇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는데 밀면은 포만감을 선사한다. 보통 한 그릇도 넉넉한데 건장한 청년들이 자기 배만 믿고 밀면 곱빼기를 시켰다가는 남기기 일쑤이다. 일반적으로 곱빼기라면 보통의 1.5배 정도이기 마련인데 밀면 곱빼기는 안 그래도 넉넉한 보통 양의 딱 2배이니 그 면이 어마어마함은 두말 할 나위 없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부산 청년 ‘정군’은 곱빼기를 시키라는 우리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보통을 고집한다.

부산의 어느 밀면 집처럼 '가야 밀면'의 양도 당연히 넉넉해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우고 나니 위장이 든든히 차오른다. 그런데，차를 타러 내려 오는 길에 길 가에 파는 햄치즈 토스트 한 개를 거뜬히 해치우는 ‘정군’의 정체는 무엇일까~?

밀면 얘기에 벌써 지면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부산에서 진짜 주문진표 막국수를 먹고 싶다면 사직동으로 향하길 강력하게 권한다. 원래 허름한 건물이지만 막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유명했던 이 식당은 최근 성장하는 매출액에 맞춰 3층의 새 건물로 다시 올렸다. 겉보기에는 여느 현대식 식당과 다를 바가 없지만 막국수의 맛만큼은 이 자리에서 20년이 넘도록 유명했던，허름할지라도 세월의 맛이 느껴지는 예전의 식당과 다름이 없는 듯 하다. 잘되는 음식점은 다 같이 아주머니들이 불친절 한가 보다. 가야 밀면과 달리 속전속결로 주문을 받는 모양이 우리가 왠지 공장의 한 라인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제일 처음 눈에 띄는 것은 국수 그릇 크기인데，어린아이 세수 시켜도 될 만큼 넉넉하다. 메밀 100%의 막국수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이 집의 막국수는 면의 씹는 맛이 악간 까끌까끌하고 면발에 찰기가 적은 것이 적어도 메밀이 40~50% 이상은 든 것 같다. 확실히 밀면의 면과 비교되는 막국수의 메밀 면은 쫄깃한 맛은 덜하지만 특유의 거친 맛이 입맛을 자극한다. 담겨진 국물 맛도 비슷한 듯，각각 특징적이다 원래 막국수는 동치미에 메밀 면을 넣은，시원하고 개운한 뒷맛이 진짜라고 하는데 이 국물은 동치미와 육수가 적절히 조합되면서도 개운함을 잃지 않은，거기다 다대기로 풍성한 김의 향기까지 역시 일품임을 증명한다.

여름날 고된 촬영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고 든든하게 채우고 싶은 영화팀이 있다면 부산시내 어느 곳에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밀면과 사직동의 넉넉한 주문진 막국수를 강력 추천한다.

김정현 부산영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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