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실 분은 밖으로 나가 비행기 날개위에 앉아 마음껏 피우시기 바랍니다. 흡연 중 관람하실 영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상당히 ‘안드로메다’적인 깨는 멘트이다.
항공업계 전문지 콘테나스트트레블러(Conde Nast Traveler>선정, 전 서계 85개 메이저 항공사 중 가장 안전한 항공사로 매해 선정, 미국 항공사 중 유일하게 2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흑자를 기록하며, 정리 해고를 단 한번도 하지 않은 항공업계의 최고의 항공사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기내방송이며 업계소식 중. ‘즐거운 직장분위기가 곧 노동생산성을 높인다.’ 라는 제목의 글 일부분이다.
 

남 몰래 어금니를 앙다물고 올 해는 반드시 뭔가 조금은 다른 한 해를 보내리라 다짐했던 2008년도 보이 가고, 여름이 되었더랬다. 장마를 걱정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밤조차 선선한 것이 달빛 마저 농익어 가을이 차 올랐다.
자고로 정직한 자연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는 법, 자연이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무심히 존재해 왔건만, 우린 늘 우리와의 유대관계 속에서만이 그 존재감을 느끼고, 감탄하게 되니 가히 어리석음이다. 책상 앞에 놓인 달력 그림 위에 먼지가 제법 뽀얗게 앉았다.
햇살을 받으면 각도에 따라 눈에 조금 거슬린다. 작년 것과 한 장씩 넘겨가며 비교해보니 달력 위에 메모들이 바쁘게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작년엔 내가 적어놓고도 분간키 어려울 정도로 무언가 할 일이 많이 주어졌었는데, 올 해는 뭔가 크게 이루어 논 것이 없는 것 같아 순간 자책감이 습관처럼 찾아든다.
버려야 할 병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무언가에 쫓기며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영역별로 두루 두루 능력이 부족한 탓일 게다. 서러운 마음이 서늘한 가을 바람을 타고 뼈 속을 헤집는다. 찾아드는 계절앞에 언제쯤 당당할 수 있을런지, 결코 관대해선 안 될 자신에게 좀더 혹독하리라 마음을 다 잡는다.
올해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작년의 절반을 넘지 못 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밖을 박차고 나가 멀티플렉스 관을 휘젓고 다녀도 딱히 한국영화 볼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볼만한 건 다 봤단 얘기다. 추석개봉영화조차 메이저 배금사는 몸을 사린다하니 요즘 이 바닥 경기 침체도 굳이 헤드라인 기사를 찾지 않아도 피부에 팍팍 스며드는 실정이다. 근간에 업계의 (?)친근한 얼굴들을 보노라면 얼굴에서 여유있는 웃음을 보기란 쉽지가 않다. 촬영 중 하나같이 시간과 돈에 쫓기는 모습들이 물기 없는 현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불황에 어김없이 아는 얼굴들이 멀리 이 곳, 부산을 찾아보니 가히 반가울 따름이다. 오래오래 이 자리에 있다보면 때론 한 두 해를 걸러 만나기도 한다.
일을 하다보면 내 소갈 딱지가 엄지손톱만 해서 그런지, 아주 반가운 사람도 있고 조금 덜 반가운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그때의 추억에 따라 그 인간에 대해 입혀논 나만의 색깔이 있어 그 색깔이 우리가 맨 처음 만났던 그 하얀색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일년에 영화 한 편이 대략 딱 이었던 것 같다.
나도 막내, 거기도 제작부 막내, 그러다 세월 지나 만나면 부장이 되고, 실장이 되고 나는 새록새록 계급장 같은 주름을 달고 목소리와 웃음소리만 커져있다. 그러다 문득 만나면 그냥 반가운 것이다. 이 업계에 오래 버텨준 서로를 격려하고, 인사를 나누며 그리웠던 만큼 안부를 챙긴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한 8년 전쯤 되나 보다.
부산영상위원회가 문패를 달고 얼마 되지 않아, 영화 <친구>가 한창 부산촬영을 했었다.
그 때는 그 여화가 그리 뜰 줄 모르고 또한, 배우 장동건의 미래와 영화도시 부산의 앞날을 그 누구도 예측 할 수 없었던 터, 남포동 근처 국제시장 문방구 앞길에선 촬영이 한창이었다. 나 역시 당시엔 스탭과 군중들 사이에 어설프게 비집고 서서 탁구시합 관중마냥 눈알만 바쁘게 굴리며 장동건과 유오성을 번갈아 바라보느라 소임을 다하지 하고 저녁 내내 현장을 지키고 있었건만 훈남을 보는 영광에 그 해 겨울, 추운줄도 몰랐더랬다.
크리스마스 전경을 배경으로 마약에 절어 벌벌 떠는 친구 준석(유오성)을 호위하며 눈알을 부라리며 걸어가는 동수(장동건)의 예고된 복수 등을 보여주는 장면을 찍어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아직 그리움과 변명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다. 여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여화가 완성되는 길고 지루한 과정들을 기꺼이 즐길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부산을 찾는 또 다른 내 친구들을 위해 그들의 영화를 위해, 제2의 친구를 위해 나는 기꺼이 무더운 여름도, 추운 겨울도 색깔을 가리지 않고 반갑게 마중 나갈 준비가 됐다.

2008년 오늘, 나는 지금 장동건과 유오성이 어깨를 기대며 걸어갔던 부산영화 <친구>의 그 길 위에 서서 또 다른 <친구>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영화<친구>는 부산을 전국에 알렸고, 배우 장동건은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부산은 이후 지금까지 수 많은 영화의 흔적들로 도시를 다양하게 산업화하고 있다. 그리고 시대의 변화 속에 꿋꿋이 지키고 견디어 온 문화적 정서와 역사성을 잃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우리가 맨 처음 만났던 그 때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오늘을 돌아본다면 나의 진보가 그들과의 거리를 좀 더 좁힐 수 있을는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아직 그리움과 변명이 남아 있음을 알고 있다. 여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길고 지루한 과정들을 기꺼이 즐길 수 있음을 알고 있다. 부산을 찾는 또 다른 내 친구들을 위해, 그들의 영화를 위해 제2의<친구>를 위해 나는 기꺼이 무더운 여름도, 추운 겨울도 색깔을 가리지 않고 반갑게 마중 나갈 준비가 됐다. 한국영화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예년과 다름없이 대작과 해외작, 저예산이 골고루 부산을 찾아주니 한 없이 고마울 따름이다.

어느덧 10월, 축제의 화려한 불꽃은 청명한 가을바다의 넓이와 깊이만큼 더 멀리 더 높이 희망으로 치달았다. 금메달을 따도 눈물 흘릴 일 없는 즐거운 올림픽이 시작됐다. 다양한 기록과 새로운 도전,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가 부산에 있다. 체력만 튼실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예선전이 없으므로 종목과 난이도에 관계없이 마구마구 들이대 보시라. 운 좋으면 장동건, 정우성만 만나랴, 나는 7년만의 재회를 고대하며 왕가위 감독도 꿈꾸고 있는 중이다. 너무 야무진 꼼수인가?
고유가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승객에 대한 즐겁고 유쾌한 멘트는 안전과 더불어 힘든 시기를 모두가 지혜롭게 넘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발상의 전화이다. 삶의 대부분을 영화의 바다에 슬라이딩하신 여러분, 모쪼록 기본에 충실하며, 여유를 가지고 즐겁게 이 고비를 견뎌낼 것을 다시 한 번 당부 드립니다! 빳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