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 매거진

2012년 영화부산 vol 01(통권 41호), 뉴스. 2012년 7월 24일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부산의 영화네트워크

글 ·
작성일2020. 12. 11

아시아 영화산업 중심，부산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흔히 네트워크란 말이 들어가면 첨단 테크닉, 기계설비 이런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아마도 머릿속에 새겨지는 이미지가 눈에 보이는 사물이고，또 구체적이라야 수월하게 임프린트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네트워크란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말하는 경우가 기계적인 배선을 지칭할 때보다 더 많다. 그리고 그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관계를 말하는 네트워크의 경우는 사람 마다 어떤 특정의 이미지들을 떠올려서 이 추상적인 개념을 대입하여 머릿속에 그려 넣게 된다.

원고청탁을 받고 보니 주제가 '아시아 영화산업 네트워크의 중심 부산'이다. 이 제목을 보고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 해운대에 늘어서 있던 바닷가 포장마차와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조선호텔까지 이 어지는 차도 양편의 보도가 그것이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게 아시아 영화산업 중심으로서 부산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의 모습이다. 부산은 이미 아시아 영화산업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었다.

칸의 크로와젯 거리에서 본 자발적 네트워크의 힘

세계적으로 제일 유명한 영화제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휴양지 칸에서 열린다. 베니스도 있고, 베를린도 있지만 칸의 명성과 권위에는 미치지 못한다. 칸이 가지고 있는 가장 커다란 매력은 남불해안에 내리쬐는 화사한 햇살과 바닷가를 따라 생겨난 크로와젯 거리이다. 그리고 휴양도시 의 고립 성이다.

크로와젯 거리를 따라 늘어선 호텔에는 영화제 기간 동안 세계 유수의 제작사배급사들이 모두 모여 사무실을 낸다. 그리고 매일 수차례 있는 레드카펫 행사를위해 의전차량이 줄이어 이 거리를 지나다닌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영화제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거리를 걸어 다닌다. 약속장소로 이동하려고，밥 먹으러 가느라，커피 마시려고, 그리고 그냥 산책하느라 걸어 다닌다.

그러다 보면 아주 반가운 얼굴을 오랜만에 보기도 하고，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얼굴을 마주치는 것도 예사이다. "야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냐? 연락처는 그대로냐? 잘나간다고 소문 들었다 축하한다! 요즘 무슨 프로젝트 하니? 밥 한번 먹자! 언제까지 있니? 우리 언제 파티 하는데 꼭 와라 살만한 영화 있니? 이번엔 뭐뭐가 좋다더라” 등 등 마주칠 때마다 이런 대화들이 각양각색의 악센트가 묻어나는 영어로 무성히 오간다. 이게 바로 네트워킹의 에센스이자 칸이 지닌 강점이다.

이런저런 파티에 가서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도 중요한 네트워킹이지만，같은 목적을가진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함께 모인다는 행위에는 아무래도 사무적인 기운이 배어있다. 이에 반해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찍는 해변가에서 마음이 넉넉히 열려 있을 때 우연히 마주치는 얼굴들은 반갑고 좋은 인상들로 남게 된다. 그래서 칸에서 만난 인연은 즐겁고 유쾌한 기억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행사장을 벗어나면 그뿐이다. 모래사장에 물을 붓듯이，도시의 규모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숫자인 영화제 참가자는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거대한 도시의 숲으로 흡수되고 마는 거다. 도쿄가 그렇고 홍콩이 그렇다. 베니스의 경우는 말 그대로 섬과 섬을 연결하듯 물길을 따라 배로 다녀야 하기에 나름 운치는 있을지언정’오다가다 스치는' 네트워킹이 없다.

오다가다 마주치는 해변가 도로，부산의 매력

이제 부산으로 돌아와 보자. 부산이 영화도시로 가지고 있는 강점에 이 해운대가 톡톡히 큰 몫을 해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다가다 마주치는 해변가 도로，그리고 죽 늘어선 포장마차가 부산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부산영화제에 참석한 많은 외국 영화계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술 마신 이야기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과음한 이야기이다. 횟집에서，꼼장어집에서 소주를 꿀떡 꿀떡, 폭탄주란 희한한 이름의 칵테일을 벌컥벌컥，어떻게 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새벽까지 마신 경험담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음날 아침 무지하게 고생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웃음 띤 표정을 보면 역시 추억은 아름답게 필터링되어 남는가 보다 생각도 하게 된다. 부산에서 많은 외국손님들이 '과음의 추억'을 아름답게 가지게 되는 그 바탕에 한국 영화인들의 열정과 순수함이 깔려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빠뜨릴 수가 없다.

'영화'라는 말이 점점 '산업화'되어 투자, 이익, 경제성，흥행，상업성 이런 단어들과 더 가까워진 요즈음 세태에서 해운대의 포장마차 촌에서는 예술, 감동, 순수 이런 아련한 단어들이 펄펄 퍼덕이는 활어처럼 살아 있어, 주고받는 소주잔과 함께 오간다. 동감을 하는 사람들 에겐 말할 것도 없지만，영화계에서 '성공'을 하여 부나 명성을 얻은，아니면 둘 다를 거머쥔 '브이아이피'들도 이 자리에선 영화가 좋아서 업으로 삼으려 했던 초년시절의 순수했던 영화소년 영화소녀로 돌아 간다. 영화를 예술로 지켜내려는 담론의 장이자, 대속과 속죄의 마당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계의 또 하나의 특징이자 장점은 부산에서 누구나가 평등하게 지낼 수 있다는 거다. 포장마차 촌에서 안성기, 강수연에서 송강호까지, 강우석, 강제규에서 홍상수에 이르기까지의 폭넓은 스펙트럼의 영화인들이 일반 영화 팬들과 내외하지 않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부산영화제에 참석해본 사람들이라면 여러 번 목격했을 것이다.

칸과는 달리 누구나가 서민적이고，장막 뒤에 숨어 있을듯한 스타들 이 해운대 선술집에 쏟아져 나오는 부산영화제는 이래서 또 외국 참가자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부산영화제하면 빼놓을 수가 없는 게 더 있는데 한국의 쾌청한 가을이다. 5월 칸의 눈부신 날씨에 절대 뒤지지 않는 게 10월의 한국 날씨와 여기에 더하여 진짜 중요한 것 하나가 친절한 부산시민들의 봉사정신이다. 외국으로 수십 년 돌아다니며 필자가 느낀 점이라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 부산에서 만나는 부산시민들의 따스한 마음과 친절함은 단연 세계 최고이다.

자，이제 짧은 글이지만 마무리를 짓겠다. 영화와 관련하여 부산의 미래 십 년, 네트워크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너무나 잘 해온 것 같다. 네트워크는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부산하면 밝고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지금까지의 시스템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첨단 빌딩은 외국에도 많이 있다. 세련된 파티는 외국에 더 많이 있다. 대화의 내용이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서민적인 식당과 술집이 부산의 매력이고，친절한 부산사람들의 미소가 부산의 얼굴이다. 이걸 잘 지켜낸다면 부산은 앞으로도 아시아에서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고，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제에서 영화산업 전반으로 점점 그 중심의 역할이 확대되어 갈 거라 믿는다.

이주익 영화제작자이다. 그동안 장동건이 케이트 보스워즈, 제프리 러쉬와 공연한 할리우드 진출작 , 현빈, 탕웨이가 미국을 무대로 같이 출연한 김태용 감독의 , 안성기와 유덕화 주연의 , 견자단과 김소연이 고려인으로 나오는 무협액션인 서극 감독의 을 제작하는 등, 국제합작 프로젝트 쪽에서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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