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마켓을 해야 하나요?" 4년 전 처음 아시아필름 마켓을 맡았을 때 자주 듣던 질문이다. 하긴 마켓 실장의 자리를 맡기 전까진 나도 부산에서 마켓을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날이 갈 수록 많은 프로그램이 생겨 굳이 마켓까지 더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막상 실제 일을 하면서 그런 의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국외자의 눈이 아니라 내부자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부산국제영화제 정도로 큰 규모의 영화제에서 마켓에 대한 고민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 영화제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한다면 말이다. 최근의 예로 베니스영화제는 올해부터 마켓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마켓이 있는 칸，베를린과 달리 마켓이 없던 베니스가 마켓을 만드는 이유도 칸，베를린에 뒤처지지 않기 위함이다. 토론토영화제의 급부상도 이 영화제가 북미시장으로 가는 통로로 기능한다는 점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부스를 차려놓는 전통적 마켓은 아니지만 토론토는 이미 마켓이 강점인 영화제로 손꼽히고 있다.
 

칸，베를린을 막론하고 영화제에서 필름마켓은 중요한 성장 동력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은 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출발한 마켓이다. 홍콩필름마트, 도쿄 TIFFCOM에 비해 어린 만큼 성장 속도도 더딘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벡스코로 행사장을 옮기면서 아시아필름마켓은 하나의 전환점을 갖게 됐다. 부산영상위원회 주최 BIFOOM과 함께 벡스코 전시장에서 맞이한 2011년 마켓은 2010년에 비해 2배 가까운 세일즈부스가 등록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PPP에서 이름을 바꾼 아시아프로젝트마켓 또한 벡스코에서 전보다 원활한 미팅이 이뤄졌다.
 

온라인 스크리닝 서비스는 아시아필름마켓의 독보적인 장점
 

2012년 아시아필름마켓은 다시 벡스코에서 영화산업 관계자들을 맞이한다.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4일 간 열리는 올해 마켓도 지난해의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 지난해보다 7% 가량 세일즈부스가 많아졌고 마켓 스크리닝 횟수는 30% 넘게 늘었다. 부스와 마켓 스크리닝이 는다는 것은 팔 물건이 많다는 뜻인데 좋은 물건을 많이 파는 곳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도 모이는 법이다. 아시아필름마켓은 마켓배지를 등록한 사람을 대상으로 온라인 스크리닝 서비스도 실시 하는데 이런 서비스 덕분에 영화제가 시작하기 전부터 영화를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온라인 스크리닝 서비스는 아시아필름마켓의 독보적인 장점이다.
 

출판 산업과 영화산업을 잇는 ‘북 투 필름’ 신설
 

올해 마켓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행사 가운데 하나는 신설된 '북 투 필름'이다. 출판산업과 영화산업을 잇는 가교가 되겠다는 취지로 출발한 이 행사는 출판사에서 영화로 만들 만한 원작을 소개해서 감독이나 프로듀서가 마음에 드는 원작과 만나게 하는 자리이다. 독일 베를린영화제의 Books at Berlinale, 대만 금마장영화제의 Book Meets Film 등 다른 국제 영화제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북 투 필름'은 27개 출판사，49편이 출품되어 최종 10편이 선정됐다. 사실 첫 행사인 만큼 출판사의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 짐작하지 못한 채 시작됐지만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럽다. 선정된 10편의 원작소설을 살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인〈굿바이 동물원〉은 실직한 가장이 돈 벌 궁리를 하다 동물원에 취직한 이야기다. 동물원 사육사가 아니라 동물원의 고릴라로 취업한 주인공은 다른 동물들도 사람이 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반지의 제왕〉은 물론〈혹성탈출〉같은 할리우드영화에서만 CG 캐릭터가 연기하는 모습을 봤던 관객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것 같은 원작이다. 일본에서 ‘이 미스터리 대단하다’ 1위에 올랐던 노리즈키 린타로의 <요리코를 위해〉는 딸의 살인범을 죽인 아버지의 수기로 시작한다. 살인자를 죽이고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가 죽지 않으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한다. <검은 집>,<백야행>,<화차>에 이어 일본 추리소설 원작 붐을 이어갈지 주목된다.<완득아>를 배출한 창비 청소년문학상이 낳은 또 다른 히트작〈위저드 베이 커리〉，초조대장경을 찾는 도굴꾼들의 이야기인 <천년을 훔치다>，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가인 전아리의 <앤>, 한겨레문학상 출신 심윤경 작가의<사랑이 달리다>, 스튜어디스 출신 정다미 작가의<공중그녀>등도 영화제작 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하다.
 

시나리오를 쓴적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3편이나 된다. ,<소년，천국에 가다>의 각본을 쓴 박성경 작가의 <쉬운 여자>,<사랑을 놓치다>,<아랑>,<최강로맨스>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데뷔를 준비중인 이정섭 작가의<미래 여인>, <원더풀라디오>의 원작자이자 SBS <두시탈출 컬투쇼>의 PD인 이재익 작가의<심야버스괴담> 등은 소설 자체가 시나리오를 연상시킨다.
 

북 투 필름은 오는 10월 9일 오전 10시30분，벡스코에서 피칭행사를 갖는다. 작가 혹은 출판사 관계자가나와 작품에 대한소개를 하게 되는데 피칭이 끝나면 오후부터 미팅이 시작된다. 사전 예약 혹은 현장 예약을 통해 관심 있는 책의 관계자와 만나 판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조만간 북 투 필름을 통해 발굴된 영화가 생기리라 기대가 크다.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젝트마켓
 

사실 아시아필름마켓의 거의 모든 행사는 북 투 필름과 유사한 형태를 갖는다. 작품이든 원작소설이든 프로젝트이든 관계자들 앞에 선을 보이고 미팅을 하는 것이다. 마켓 스크리닝이 영화를 수입하고자 하는 회사들을 대상으로 영화를 선보이듯 프로젝트마켓은 촬영 전 단계의 영화를 소개한 뒤 투자자，제작자와 만난다. 아시아필름마켓과 함께 열리는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이하 APM)은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젝트마켓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도 30편의 프로젝트가 선정됐고 이중 한국에서 7편이 뽑혔다. 김태용, 연상호, 민규동, 박흥식, 전수일, 전재홍, 박정범 등 이름만 들어도 다음 작품이 궁금한 감독들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APM은 그 동안 많은 성과를 냈다. 이창동의<시>, 봉준호의<괴물>, 허우샤오시엔의<쓰리 타임즈>, 왕샤오슈아이의<베이징 자전거>, 이와이 순지의<릴리 슈슈의 모든 것>등이 모두 APM을 거쳐 완성 되었다.
 

특히 올해는 APM에서 배출한 영화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인도네시아 감독 에드윈의〈동물원에서 온 엽서〉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고 일본 양영희 감독의〈가족의 나라〉는 베를린영화제 예술영화연맹상을 받았으며，한국 허진호 감독의<위험한 관계>가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APM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완성되어 올해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는 작품들도 많다. 위의 세 작품 외에 한국에서 1000만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최동훈 감독의〈도둑들〉, 대만 양야체 감독의〈여자친구 남자친구〉, 미국 리 아이작 정 감독의〈아비가일〉，태국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왜곡>등은 모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들이다.
 

영화제가 독립영화 제작자나 감독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진 APM은 아시아영화펀드(AGF)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성장하고 있다. ACF 인큐베이팅 펀드에 선정된 뒤 APM에서 공동제작 자나 투자자를 만나 촬영을 마친 뒤 다시 ACF 후반작업 지원펀드를 받아 작품을 완성,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상영을 하고 아시아필름마켓 에서 판매를 하는 일목요연한 공정이 완성된 것이다. 실제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인 <텔레비전> 은 ACF와APM의 수혜를 받아 완성된 영화다.
 

BRC프로젝트 피칭과 K0FIC인더스트리 포럼도 주목할 만한 행사
 

올해 주목할 프로그램으로 부산영상위원회 (이하 영상위)와 함께 준비 한 ‘BFC(부산영상위원회) 피칭’도 빼놓을 수 없다. 영상위가 영화기획 • 개발비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한 작품과 부산지역 영화 기획 • 개발 인큐베이팅 지원작 등 총6편을 선정해 준비한 이번 피칭 행사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정된 작품 6편을 선보인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준비하는 KOFIC 인더스트리 포럼도 새로운 행사로 영화관계자들의 눈길을 끌만하다. 영진위는 '아시아의 공동제작'을 주제로 다양한 세미나와 일대일 미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외에 공동제작을 위한 프로듀서 워크숍인 Ties That Bind, 독립 영화 제작지원을 하는 전 세계 펀드를 소개하는 필름펀드토크，한국콘텐츠 진흥원이 선정한 신화창조 프로젝트 피칭 등 다양한 행사가 마켓 기간 동안 벡스코에서 열린다.
 

흔히 영화인들끼린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면 술만 마시다 끝난다는 말을 한다. 해운대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만난 영화인들이 반가운 마음을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올해부터 술 마시는 시간외에 비즈니스 할 시간도 좀 남겨두시라. 알차고 즐거운 행사들이 여러분을 기다린다. 영화제 기간 중 10월 8일부터 11일까진 잊지 말고 벡스코에 꼭 한번 들르시길 바란다.
 

2012 아시아필름마켓 부대행사 스케줄
장소: 백스코 계1전시장，이벤트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