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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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화부산 vol 06(통권 46호), 무비파일, 길선영의 아시아영화통신. 2013년 7월 6일

Asia Movie File 세계영화의 新 중심, 아시아! 아시아영화의 빛나는 내일, 젊은 기대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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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 12. 18

21세기, 아시아영화는 이제 세계영화계의 질적 역학관계에서 뒤로 미뤄둘 수 없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불과 한달 전 칸영화제에서 아시아영화가 주요 경쟁부분을 고루 석권하며 약진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 베니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공식 상영작으로 초청되거나 수상하는 작품 및 감독들은 그 해 영화계의 동향을 가늠하게 하는 척도로 이해되는데, 올해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Like Father, Like Son>(2013)로 심사위원 대상을 거머쥔 고레에다 히로카즈(일본)와 <천주정A Touch of Sin>(2013)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지아장커(중국), <미싱픽처The Missing Picture>(2013) 와 <오마르Omar>로 각각 주목할만한시선 부문 대상과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리티 판(캄보디아)과 하니 아부 아사드(팔레스타인) 등 기존 아시아영화의 거장들과 함께, 장편 데뷔작 <일로 일로Ilo Ilo>(2013)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한 앤소니 첸(싱가포르)과 <세이프>(2013)로 단편영화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문병곤(한국) 등이 칸의 선택을 받았다. 주목할 점은 아시아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기존 감독들뿐 아니라 다소 생소한 젊은 감독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는 점이다. 신작을 발표할 때마다 두드러진 미학적 성취로 세계의 주목을 이끌어내고 있는 거장들이 아시아영화의 빛나는 오늘이라면, 이들 ‘젊은 피’는 오늘의 영광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내일이라 할 수 있겠다.

주머니 속의 송곳: 젊은 감독 군의 비상
칸영화제만으로 아시아영화의 위상을 논하는 것이 다소 비약적이라 판단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매년 칸영화제는 그 시기의 세계영화계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칠만한 작품들을 발굴하고 끄집어내는 장으로 통한다. 아시아의 젊은 감독 군이 칸에서 주목받았다는 것은 그런 맥락에서 무게감 있게 회자될 만하다. 더구나 칸의 러브콜이 옳은 선택 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날 아시아영화계는 젊은 감독들의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며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1) 대만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
동북아시아에서 젊은 감독들의 존재감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은 의외로 대만이다. 이는 중국 본토에서 왕샤오슈아이, 지아장커, 장위엔, 로 우예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6세대 감독 군’ 이후 이들의 작가주의를 계승하는 후배 독립영화 감독 군이 좀체 눈에 띄지 않는 것과는 극명히 대비되는 추세라 할 수 있다. 대만의 영화산업 자체는 중국 본토나 홍콩에 비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지는 못했으나 허샤오시엔, 차이밍량, 장 조치 등 대만 작가영화는 꾸준히 거장감독과 걸작을 배출해 왔는데, 지난 해 <빛의 손길Touch of Light>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잔잔한 감동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창롱지, 버마 출신 화교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영화적으로 발현시킨 단 두 편의 장편 <버마로의 귀환Return to Burma>(2011)과 <빈한한 삶Poor Folk>(2012)만으로 대만의 신성으로 떠오른 미디지, 주인공의 성장통을 따스한 시각과 회화적 상상력 으로 표현해 낸 <별이 빛나는 밤에Starry Starry Night>의 린슈유 등 대만의 주목할 만한 젊은 감독들이 주로 비상업영화 군에 포진해 있다는 점도 이들 선배 감독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을 테다. 10년 전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1%대를 맴돌았던 대만영화산업은 현재 20%를 조금 밑도는 수준으로, 시장 경쟁력 확보와 함께 대만 정부의 영화산업 진흥정책에 힘입어 전도유망한 신진감독들의 밝은 미래를 점쳐본다.

<원더풀 타운Wonderful Town>(2007)

2) 주목받기 시작하는, 동남아시아
1990년대 자국영화의 뉴웨이브를 주도한 위시트 사사나티엥과 논지 니미부트르, 2010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피찻퐁 위라세 타쿤 등을 배출한 태국을 제외하면, 동남아시아는 아시아 내에서도 영화적으로 크게 주목받은 지역이 아니다. 이 지역에서는 급진적인 경제 발전과 정치역학의 개편이 한창인 탓에 영화산업이 자리를 잡고 뿌리 내릴만한 토대 역시 아주 최근에 와서야 근대화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각국의 독특한 문화유산과 신화, 다양한 언어와 정서, 타 대륙과 분명한 차별성을 가지는 생활 습관 및 정치적 상황 등은 이 세대를 살아가는 젊은 감독들에 의해 한껏 고무된 영화미학으로 탄생하고 있다. 우선 올해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의 주인공, 싱가 포르의 앤소니 첸은 <일로 일로>가 첫 장편이지만, 이전에 만든 세 편의 단편영화가 모두 칸영화제에 초청되었던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또한 최근 주목할 만한 젊은 감독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대거 발견되는데, 에드윈은 두 번째 장편인 <동물원에서 온 엽서Postcards from the Zoo>(2012)로 인도네시아 영화로서는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고, 여성감독인 카밀라 안디니는 인도네시아의 ‘해양집시’ 부족인 바조 족의 문화와 정서를 담아 낸 <거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The Mirror Never Lies>(2011)로 단숨에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기대되는 신인감독으로 떠 오르며 아버지이자 인도네시아 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가린 누그로호의 딸이라는 그림자를 스스로 벗어냈다. 이들의 영화는 주로 그 사회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바라보는 감독 자신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처럼 매우 로컬(local)한 소재를 놀랍도록 전인간적인 방향으로 풀어 내는 연출이 괄목할만하다. 이외에도 데뷔작 <원더풀 타운Wonderful Town>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태국영화의 차세대 뉴웨이브 주자로 지목되었던 아딧야 아사랏과 <36>(2012)으로 태국감독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하며 태국의 뜨거운 신인으로 부상한 나와폰 탐롱라타나릿,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저예산으로 수작 <트럭 밑의 삶Chassis>(2010)을 만들어낸 후, 최근 <죽음의 행군The Death March>(2013)으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진출한 필리핀의 아돌포 알릭스 주니어 등도 동남아시아의 신진감독 군을 설명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이름들. 이들은 현재 모두 새 작품을 제작 중이다.

<늙은 여자 이야기 The Story of an Old Woman>(2013)

3) 제작편수는 적지만 뛰어난, 중앙아시아
최근 중앙아시아영화를 논할 때 특히 관심을 가질만한 지역은 카자흐스탄. 연간 제작되는 영화는 스무 편에 불과하지만, 속속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젊은 감독들의 활동으로 미루어보아 앞으로도 꾸준히 아시아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지역이 될 듯하다. 데뷔작 <하모니 레슨Harmony Lessons>(2012)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에미르 바이가진이나 데뷔작 <중개인Realtors>(2011) 이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총 여섯 개의 상을 휩쓴 후 신작 <집짓는 사람들Constructors>(2013)로 또 다시 세계에 중앙아시아영화의 매력을 선보이고 있는 아딜칸 예르자노프는 <스튜던트Student>(2012)로 작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진출하기도 했던 카자흐스탄의 거장 다레잔 오미르바예프의 뒤를 이을 카자흐시네마의 내일. 또한, 알렉세이 고를로프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첫 장편영화 <고리 One Link>(2012)를 만회하려는 듯 마비 된 몸으로 수년간 요양원에서 생활하다 어느 날 갑자기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 로 돌아가게 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원 테이크-원 컷 영화 <늙은 여자 이야기The Story of an Old Woman>를 제작 중인데, 올 10월 공개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로막힌듯한 길 끝에 새 길이…
물론 탁월한 표현력과 영화적 상상력의 감독이 갖춰졌다고 해서 아시아 영화의 내일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아시아국가에서는 사전 검열 및 상영관 부족으로 인해 이들의 영화가 본래 의도가 심하게 왜곡된 채로 상영관에 걸리거나 개봉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 푸릇한 새싹들이 무럭무럭 자라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아시아 영화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만큼 업계의 관심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상업영화와 정치적으로 안전한 영화, 또는 네임 밸류 있는 거장들의 영화에 쏠리게 마련이고, 이러한 이유로 누군가는 신진 작가영화 감독 군의 ‘갈 곳 잃음’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젊은 아시아 영화 인들은 앞서 그 길을 닦았던 선배 감독들이 ‘작가영화의 죽음’이라는 시대의 잿더미 속에서 새 불씨를 피워 오늘에 이르렀듯 잃어버린 길 끝에서 새 길을 찾아 내일로 나아가겠지만, 메마른 땅을 뚫고 싹을 틔우는 것이 씨앗의 일이라면 그 땅을 적시고 다지는 일은 누가 할 것인지.

길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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