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 매거진

2013년 영화부산 vol 07(통권 47호), 뉴스, BFC뉴스. 2013년 10월 5일

REPORT 영화 in: 영화 전후의 말들 -2013부산영상기술교육 5차

글 ·
작성일2020. 12. 18

영화가 시작되다
우리는 영화의 밖에서 영화를 만났다. 스크린은 없었고 사운드는 꺼져 있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영화’였다. 영화는 암전되는 법 없이 배우,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의 입(경험, 삶)으로 여전히 상영 중이었다. 심지어 첫째 날 강연회가 끝난 뒤에도 영화는 끝나는 법 없이 삶으로 지속되었다. 수강생 모두가 흥분한 목소리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치 무박 2일의 상영회처럼, ‘명필름 영화학교 2차 부산 특강’은 영화와 접합된 사람들을 만나게 만들었고 서로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미디엄 숏으로, 롱테이크로 포착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시나리오 작가가 되었고, 배우가 되었고, 감독이 되었으며, 제작자가 되어 엉덩이를 들썩였고, 스텝으로 분주히 오고 갔다. 그리고, 결국 영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 영화는 상영되지 않을 테지만, 우리는 각자의 영화를 갖게 되었고, 또 우리에게 낯선 이웃과 친구 그리고 동료를 얻게 했다. 그러므로 영화는 극장뿐 아니라 도시 어디에서든지 항상 상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영화가 시작된다.

2013년 9월 7일(토)과 8일(일) 양일간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BCC)에서 진행한 2013부산영상기술교육 5차 <8인의 한국영화 장인들>을 지역 영화인 및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뜨거운 수강 열기 속에 막을 올렸다. 부산영상위원회와 명필름의 업무협약에 따라 부산지역 연계사업의 두 번째 프로젝트로 진행된 이번 강연은 이미 4월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기술 분야 장인들과 함께한 <9인의 한국영화 장인들>에 이어, 박찬욱, 문소리, 정지영, 나현, 김동원, 심재명 등 각 분야의 저명한 영화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영화인생과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에 나선 그들은 배우·감독·시나리오 작가·제작자라는 각기 다른 포지션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근본적으로는 ‘영화’라는 하나의 세계를 향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영화의 세계는 그 어떤 매체보다 협업을 통해서만 창조 가능한 세계이므로 8명의 장인이 들려주는 이야 기는 지극히 개별적이면서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영화 의 협업 과정은 각각의 포지션이 수행하는 역할들의 개별적 깊이와 그것들이 만나고 충돌하는 과정 속에서 현실과 상상의 각축장을 구성하고 산업과 예술의 합작품으로 탄생하는 듯 했다.

강좌, 첫날

문소리 배우 | 박찬욱 감독 | 김동원 감독 | 심재명 제작자

문소리 배우
<박하사탕>(1999)으로 데뷔한 문소리는 배우라는 직업이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작업이라고 입을 열었다. 또한 연기하는 것을 도(道) 닦는 과정에 비유하며, “깨달음의 과정은 도를 닦는 사람마다 다르다. 깨달음의 실체를 알고 접근하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화두와 방법으로 스스로 닦아 나가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도 배우 문소리가 연기를 대하는 자세일 것이다. 문소리는 강의실의 딱딱한 강의방식에서 벗어나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객석과 소통하고자 했다. 그것은 대부분 배우 문소리의 연기(관)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에 대해 “표준화된 매뉴얼이 있다기보다는 각자의 방법으로 연구하고 정진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영화를 촬영할 때 시나리오 속 캐릭터와 실제 자신과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는가에 대한 객석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응답은 “영화출현을 결정한 후에는 자신의 일상생활 속에서 극중 캐릭터와 연결 지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가족의 탄생>(2006)에서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며 동생을 기다리는 ‘미라’라는 인물의 초점을 초등학교 앞 떡볶이 가게의 공간적 특성에 대한 발견과 연결시켰던 일화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핸드볼 국가대표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출연을 결정하고 난 다음 거울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쩍벌리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랬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연기라는 작업이 감정의 바닥을 뒤흔드는 일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창동 감독이 자신에게 했던 조언을 보태며, 문소리는 자신의 꿈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인기는 영화 속 캐릭터의 것이고, 화려한 옷은 협찬이며, 멋진 차도 소속사 소유다. 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욕망을 버려라”는 말씀을 새기며 자신의 꿈은 그저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녀의 강의가 끝이 났다. 배우 문소리 이전에 인간 문소리를 만난 것만 같았다. 다음 번, 영화 속에서 볼 그녀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박찬욱 감독
두 번째 강연자로 박찬욱 감독이 나섰다. 박찬욱 감독의 강연은 영화평론가 김영진과 함께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강연장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토크의 중심 내용은 올해 초 영화 <스토커Stoker>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겪은 일화와 더불어 제작자로 나선 <설국열차>(2013)와 관해서였다. 먼저, 박찬욱은 <스토커>를 통해 할리우드 시스템의 끊임없는 간섭과 제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겪은 어려움에 대해 들려주었다. “작품의 스타일이나 장르 성격상 스튜디오 측과 갈등 소지가 컸다.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는데, 작업을 해 보니 스튜디오의 의견이 취향 차이일 뿐 틀린 얘기는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또 개봉 후 관객이 할 얘기를 미리 듣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했는데, 감독을 찍어 눌러서 영화를 망치는게 아니라 더 성숙하고 풍부하게 만들려는 그들 나름의 노력으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감독 지망생들로부터 끊이지 않는 질문 세례를 받았다. 영화<스토커>의 미아바시 코브스카(인디아 스토커 역)와의 촬영 당시 소통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했냐는 객석의 질문에 소통의 문제는 ‘언어의 장벽’에 한정된 문제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감독의 선택을 묻는 질문에도 그는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에 걸 맞는 멋진 답을 돌려주었다. 대중성을 선택한 감독이 덧붙인 말은 대중을 협소한 개념이 아니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있고, 현재에는 없어도 미래에는 존재할 수 있는 개념으로 볼 것을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잃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했다. 이외에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과 제작자와의 관계에서 마찰은 없었는가 등의 개인적인 질문이 이어졌고 감독은 유머있게 답하는 센스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박찬욱 감독은 앞으로 자신이 찍고 싶은 장르는 서부극이라는 말로 언젠가는 선보일 후속 작품에 대해서 살짝 언급하기도 했다.

김동원 감독
1987년 <상계동 올림픽>과 2004년 <송환>의 김동원 감독은 다큐멘터리와 저널의 구별을 강조했다. 저널이 어떠한 논쟁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과는 달리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주관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세계에 대한 명백한 입장 표명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그의 고집은 “현실의 드라마가 훨씬 위대하며, 현실에서 논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는 카메라의 눈을 통해 진리와 진실에 접근하려는 다큐 멘터리는 감독의 주관적 의견이 반영되는 것으로, 감독의 주관성이 카메라와 대상간의 관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social actor’를 바라볼 때,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판단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그의 관점은 현실을 구성하는 리얼/허구의 경계가 여전히 문제적인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김동원 감독은 진리와 진실에 대한 가치들이 의문에 부쳐지는 현재에 접어들면서 모더니즘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쇠락하는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와 동시에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펀드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음을 넌지시 전하는 그의 말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여전한 열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심재명 제작자
심재명 대표의 강연은 ‘영화 제작자에게 제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개발 단계(시나리오·소재 개발) - pure production 단계(스탭구성, 캐스팅, 파이낸싱, 계약) - production 단계(촬영) - post production(편집, 사운드, 특수효과 작업, 투자자와 배급사 의견 조율) 순서로 이루어지는 영화제작 과정에서 심재명 대표는 제작자를 ‘한 집안의 가장’이라고 비유했다.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데에 투여되는 힘의 작용에는 책임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한다. 영화 작업에 참여하는 각각의 위치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매 순간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제작자는 비즈니스적 역량과 동시에 예술적 안목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심재명 대표가 제작자로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단지 상업적인 성공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심 대표가 제작했던 영화들의 목록을 보면, 수동적으로 트렌드에 편승하기 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에 분투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접속>(1997),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바람난 가족>(2003)이 보여주었던 사랑·분단·가족에 대한 새로운 시선,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보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스포츠 영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제작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최근에는 사장될 뻔 했던 시나리오를 관객과 만나게 해주었던 <건축학 개론>(2012)에 이르기 까지 말이다. 제작자는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항상 조율할 수 있는 ‘소통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심대표는 감독과의 충돌 역시 제작자가 매번 감내해야 할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속에서 발생하는 견제와 긴장은 작품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작자로서 중요한 것은 위기를 관리하며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큰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강좌, 그 이튿날

나현 시나리오 작가 | 권해효 배우 | 정지영 감독 | 이은 제작자

강연회의 둘째 날 아침 10시. 이른 주말 아침부터 이어지는 강연이라서 수강생들이 제시간에 올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있었음에도 강연장은 전날과 다르지 않게 좌석을 꽉 매웠다. 수강생들의 열기/열정이 식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강연회에 참석한 수강자들의 면모였다. 강연회 신청이 조기에 마감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수강자들의 대부분이 부산 시민일 거라고 짐작했다.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영화인들을 쉽게 만날 수 없는 부산 시민들이 신청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강연이 시작되고 확인을 한 결과, 수강생의 반 정도가 부산 시민이기 보다는 서울, 경기, 대구 지역에서 참여한 수강자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를 직업으 로 가지고 싶어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분명, 한국영화산업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 나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현 시나리오 작가
<목포는 항구다>(2004), <화려한 휴가>(200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시나리오 작가 ‘나현’이 강의를 시작했다. 작가가 부산출신이어서 그런지 익숙한 사투리가 정감 있게 들렸다. 강연 내용은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에 입성하기 전까지의 어려움과 궁핍함, 첫 작품 <돌려차기>(2004)가 쓰인 계기와 실패, <화려한 휴가>(2007),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흥행작가의 반열에 오르고 난 후의 일화를 전했다. 뿐만 아니라 나현 작가는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시나리오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수강생들에게 알려주었다. 강연을 들으며 든 생각인데,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면 배우와 감독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지는 것이 의례인 우리 사회에서 시나리오 작가는 앞으로 나올 수 없는 그림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시나리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고생해서 완성한 시나리오가 자신의 작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좋은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작가의 말이 공감이 가면서도 왠지 씁쓸하게 들렸다. 영화는 ‘협업’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이다.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텝들의 노고가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나현 작가는 시나리오 잘 쓰는 법, 시나리오가 공모에 걸리는 팁을 전했다. 예를 들면, 취재를 적극적으로 해라, 도서관을 자주 다녀라, 자료를 잘 활용하라, 시나리오를 쓸 때에는 초반에 심사위원들의 흥미도를 끌게 글을 써라, 오타가 없어야 하며, 제목이 눈에 띄어야 한다는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지침을 알려주었다. 또한 시나리오를 쓴다고 작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장경험도 익혀보는 것도 좋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방법이라며 “시나리오 작가에게도 현장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시나리오를 쓰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권해효 배우
다음 강연자는 영화 <더 웹툰:예고살인>(2013), <용의자X>(2012)의 배우 권해효였다. 청바지에 푸른색 티셔츠를 입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강연장에 들어선 그는 연기지망생에게 연기를 가르치는 수업인 줄 알았다며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는 모습이 마치 소년 같이 해맑아 보였다. 권해효는 주최측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고 자신이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찬찬히 풀어냈다. 자신이 배우 생활을 하며 겪은 일화를 곁들여 강연을 진행해서인지 두 시간 내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 배우들에게 유머와 여유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생각 한다며, 유머와 여유 갖기를 조언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유머와 여유는 배우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은 비싼 대학 등록금에 치이고, 비정규직에 눈물 흘리고, 사람들은 매일 사건 사고가 넘쳐흐르는 신문 기사를 독대하니 사회가 경직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런 사회에 유머와 여유 갖기가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유머와 여유만이 이 경직된 사회를 넘나드는 기제가 될 수 있어 보이는 건 왜일까. 유머와 여유, 그것은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감정 혹은 덕목인 것 같다. 수강생들 중에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꽤 많이 참석해 강의를 들었는데 권해효는 그들에게 재능은 누구나 있는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말고 나아가기를 당부했다. 또한 ‘콤플렉스 이겨내기’, ‘연기란 숨을 쉬는 행위와 같다’라는 주옥같은 말들을 연기지망생들에게 전했다. 마지막으로 권해효는 단호한 목소리로 배우의 연기에 대해 말했다. “연기자는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표현하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감정을 전달하는데 급급하다가는 결국 배우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놓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정지영 감독
강연회가 있기 전날인 금요일(9/6),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제작 정지영, 감독 백승우)가 개봉한 지 하루 만에 메가박스에서 상영중지를 당했다는 소식을 신문기사로 들을 수 있 었다. 영화 개봉과 상영중지 소식이 며칠 상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이 영화의 제작자 정지영 감독을 힘들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정지영 감독은 강의에 나섰다.
대개 정지영 감독에 대해서 말할 때 일흔을 앞둔 노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하지만 감독의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그 어떤 젊은 감독들보다 열정이 넘치고 사유의 폭이 넓은 감독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 영화를 만드는 일은 나이와 무관한 일임이 분명할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강연에 앞서 메가박스 상영중지로 논란이 되고 있는 <천안함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다음날인 월요일(9/9)에 상영중지와 관련해 영화인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며, <천안함 프로젝트>는 정치적인 내용과 관련이 없음을 피력했다. 감독이 말하길 이 영화는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하는 것, 정부가 내린 결론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영화이지, 거짓을 고하는 영화가 아니라고 당부했다. 사건에 의심을 갖는 자를 ‘종북주의자’로 보는 이 사회의 경직된 자세를 보면서 이제 민주주의는 혹은 표현의 자율성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자못 회의감이 들었다.
다음으로, 정지영 감독은 1990년 후반 이후 영화판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영화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영화 <부러진 화살>(2011)이 만들어진 계기에 대해서 간략하게 전한다. 그리고 이 영화의 흥행 성공으로 다음 영화 <남영동 1985>(2012)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두 편의 영화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렇게 꾸준히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감독은 아무도 현실의 민감한 문제를 영화화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마도 감독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영화를 보고 많은 사람이 토론 할 때 비로소 그것이 현실사회정치에 참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그것이 비주류라고 불리고, 흥행영화 반열에 들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어 보이는 정지영 감독을 보면서 그에게 있어 영화란 무엇인지, 그가 영화를 대하는 자세가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감독은 언젠가는 ‘한국 사회의 교육’에 대한 영화를 찍고 싶다고 전했다.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사회)을 문제 삼기 이전, 가장 먼저 교육의 문제를 짚고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인 것이다.

이은 제작자
강좌 마지막은 영화 <건축학개론><공동경비구역 JSA>의 이은 명필름 공동대표였다. 이은 대표는 강연에 앞서 수강생들이 궁금해 하는 명필름 영화학교 설립 취지(2015년 설립 예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영화계를 이끌어 갈 ‘전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이은 대표의 의지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일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미 현재의 시점에서도 한국영화계의 전사는 여럿 존재하고 있었음을 이틀 동안의 강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강연을 맡은 배우와 제작자, 작가, 그리고 강연회에 참석한 수강생들을 통해서 말이다. 이은 대표는 본격적인 강의에서는 제작자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 촬영현장에서 제작자는 어떤 역할을 하는 지 등등, 제작자가 되고 싶은 수강자들에게 제작자의 자세에 대하여 세심하게 전달했다. 강연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은 대표는 “자본주의적인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앞으로 명필름에서 제작하는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
이은 대표의 강의를 마지막으로 이틀 동안의 길다면 긴, 짧다면 짧은 강좌가 끝이 났다. 사람들이 북적이며 빠져 나가고 있는 강연장을 둘러보았다. 수강생들의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리를 뜨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서 영화에의 열정/열의를 본다. 영화 강좌는 끝이 났지만, 그들에게 있어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영화는 지금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를 꿈꾸는 삶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김수현 경성대학교 대학원 문화기획, 행정, 이론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문화이론을 전공했다. 공동저서로 [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이 있다. .김필남 경성대학교에서 관쓰기 수업을 하고 있으며 씁화와 문학평론을 겸하고 있다.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공동저서로 [지역, 예술을 말하다]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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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영화 in: 영화 전후의 말들 -2013부산영상기술교육 5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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