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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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영화부산 vol 10(통권 50호), 뉴스, 길선영의 아시아영화통신. 2014년 7월 3일

Asia Movie File 거장이 돌아왔다. 칸에서, 장이머우의 [귀래]

글 ·
작성일2020. 12. 22

주요 부문에서 아시아타이틀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올해 칸영화제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은 가볍지 않았다. 칸영화제의 필름마켓인 마쉐드필름 (Marche du Film) 참가자 중 30% 가량이 중국 바이어와 세일즈사였음은 물론이요, 장이머우(장예모), 우위썬(오우삼), 지앙웬(강문) 등 중국의 스타감독들이 자신의 신작에 출연한 배우들을 대거 대동하고 등장한 행사면 어김없이 취재인파가 몰리곤 했다. 여기에 지난해 <천주정>(2013)으로 각본상을 수상한 자장커(가장가)는 심사위원으로 칸의 초청을 받았고, 장이머우의 <귀래 > (2014)는 비경쟁부문에 이름을 올렸으니, 나름대로 의미를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을 테다. 화이브라더스나 완다미디어그룹, 소마분등, 디스트리뷰션 워크숍 등 주요 대기업의 활약이야 굳이 칸이 아니더라도 두드러지지 않는 곳이 없을 만치 당연한 일이어서, 개인적으로 오히려 촉각을 곤두세웠던 대상은 장이머우의 신작 <귀래>에 대한 평단과 언론의 ‘이러쿵저러쿵’이었다. 비교적 초기작들에 가까운 색채와 형식을 띠었던 <산사나무 아래 > (2010)를 제외하면 <영웅: 천하의 시작英雄>(2002)부터 최근작 <진링의 13소녀 >(2011)까지 장이머우 영화에 대한 평가와 시각은 들쑥날쑥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그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의문하게 만들곤 했으니, 마지막 연출작 <진링의 13소녀> 이후 2년 반 만에 들고 나온 <귀래>에 신경이 집중되는 것은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사정이었달까. 칸을 떠나던 날 아침, 어렵사리 구한 티켓을 가지고 사뭇 비장하기까지 한 마음으로 <귀래>의 인터내셔널 프리미어가 이뤄진 뤼미에르 극장에 들어섰다.

말 많은 장이머우의 복귀작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귀래>는 공개 전부터 여주인공 펑완위 역의 궁리가 <황후花滿城盡帶黃金甲>(2006) 이후 7년 만에 출연한 장이머우의 작품이라는 데서, 또 <인생活着>(1994),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1999), <산사나무 아래> 등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단골 소재로 작업해 온 장이머우가 다시 한 번 이 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이라는 데서 기대를 모았는데, 결론부터 꺼내놓자면 <귀래>는 성공적인 복귀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강산이 한 번 변할 만큼의 시간 동안 지속하여 온 부진을 자조라도 하듯, 장이머우의 연출력은 영화 곳곳에 참여한 오랜 동료들과 매끄럽게 조화를 이뤘다. <귀래>는 <진링의 13소녀>에 이어 또 한 번 중국 여류작가인 옌거링(엄가령)의 소설에서 착안한 작품으로, 이번에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인생의 풍파를 겪는 상하이의 옛 지식인 육언식의 이야기를 다룬 <육범언식(역-범죄자 루옌시)陸犯焉識>(2011)을 바탕으로 제작했다. 장이머우의 전작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2005)와 왕자웨이(왕가위)의 <일대종사一代宗師>(2012) 각본가로 유명한 저우징즈(추정지)는 원작의 채 10분의 1도 되지않는 약 서른 페이지 가량의 마지막 장(章)만을 시나리오로 옮겨낸다. 중국의 과거와 현재에서 지우고 생각할 수 없는 문화대혁명은, 이로써 사건이 아니라 루옌시(육언식)와 그의 가족이 살아내는 삶의 배경으로 이름지어진다.

귀래歸來 1. 돌아오지 않을 것들을 기다리며
문화대혁명 기간, 지식인 루옌시는 공산당 정부로부터 ‘우파’로 분류되어 사회교화라는 미명 아래 가족과 생이별한 채 교육대에 수감된다. 기억에 없는 아버지의 존재에 무감한 그의 딸 단단은 체제선전을 위한 무용단의 촉망받는 발레리나로, 당 지도자들로부터 ‘아버지가 교육대를 탈출했으며,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를 은닉해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듣는 자리에서 망설임 없이 “도우메이관시(나와는 상관 없는 일이예요)!”를 외칠 만큼 당의 체제와 사상에 세뇌된 젊은 층을 대표하는 인물. 시종 신경질적이고 무표정한 단단에게 하나의 꿈이 있다면 <홍색낭자군> 공연의 솔로를 따내는 것 인데, 반정부인사인 아버지로 인해 그 꿈을 뺏기는 것이 가장 두려운 그녀는 십칠 년 만에 만난 아버지의 귀환을 환영하지 못한다. 옌시는 도주 중 가까스로 아내 완위에게 “내일 오전 8시,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서신을 남기지만, 그 약속장소는 결국 자신의 꿈과 엄마를 포기할 수 없는 딸의 밀고로 다시 한 번 헤어짐의 장소가 되고 만다.

항일전쟁 중 하이난다오(해 남도)에서 공산당에 가세해 혁명의 삶을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창작발레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은 중국 공산당의 대표적 체제 선전무용이다.

3년 후, 문화대혁명이 중국 인민을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옌시가 돌아온다, 탈출이 아닌 송환. 죽음을 불사한 탈출을 감행했던 자답지 않게 그의 귀환은 허무하리만큼 고요하고, 평범하게 이뤄진다. 그는 원망 같은 것도 잊은 듯, 삼년 전 딸이 필사의 노력으로 자신을 배신했던 그 기차역에 여행이나 다녀온 모양으로 돌아와, 이번 에는 그 역에서 자신을 마중하 기로 한 딸을 기다린다. 그 사이 무용을 포기한 단단은 섬유 공장의 여공이 되어 있다. 목표와 장애물은 세트상품이기에 이미 포기한 목표를 위협하는 존재는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은 탓인지, 그녀는 옌시에게 적대적이지도 않다. 자신을 구출하려던 처절함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아내 완위는 옛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돌아온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환자가 되어 있다. 비로소 배신도 문화대혁명도 없는 삶이 찾아왔건만, 여전히 옌시의 귀래는 성사되지 못하는 것이다. 완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과거를 되짚어가는 길에서 옌시는 자신이 부재한동안 가족이 감내해야 했던 끔찍한 희생의 흔적을 발견한다. 이제 옌시는 자신과 완위, 단단이 다시는 가족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감당해야 한다. 영화에서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흐르는 동안 수훈갑은 단연 장이머우와 음악감독 첸치강(천치깡)의 콤비플레이다. 중국전통음악을 서구적 형식과 블렌드하는 능력이 탁월한 첸치강은 <귀래>에서도 옛 혁명가를 모티브로 한 론도(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반복적으로 전개하는 음악형식) 구조의 피아노 협주곡을 통해 옌시의 감정변화를 육화한다. 감독으로서 장이머우의 ‘대체불가능성’도 여기서 드러난다. 옌시가 완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옛 사진, 보내지 못한 연서들, 기억 속의 피아노 선율 같은 과거의 흔적을 끌어 올 때마다 그 아름다운 기념물들이 실은 고통을 덮고 있는 ‘박제품’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각성의 과정이 마치 론도 형식처럼 반복적인 구조로 전개되는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서도 완위의 조각난 기억은 끝내 하나로 얽어지지 못하고, 옌시는 그녀의 곁을 맴돌며 ‘편지 읽어주는 동지(letter-reading comrade)’로 남아 매달 5일이면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 완위와 함께 자신의 귀래를 마중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나간다. 과거에 살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와 현재에 살며 아내의 기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남편, 마주치기만 기다리며 걷다 서로를 지나친 줄도 모른 채 한 방향으로만 내달리는 모습이 꼭 <집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게 하는 순애보다.

문화대혁명 시기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이야기 <산사나무 아래>와 마찬가지로, <귀래> 역시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 대신 철저히 드라마에 집중한다. <귀래>는 그러나 역사와 현실을 무력화하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 완위의 치매는 여생 동안 기억하고 살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시절을 스스로 잊어 버린 몸짓으로 해석될 수 있고, 문화대혁명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옌시는 고통스러운 역사는 잊히더라도 그 외상은 사라지지 않고 달라붙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가족보다 체제를 우선시하면서도 결국은 스스로를 위해 아버지의 도주를 밀고한 단단은 중국의 1자녀 정책 세대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귀래>에서 성장과 변화를 보이는 인물은 단단이 유일한데, 아버지를 배신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꿈을 포기하고, 그를 배신한 죄로 하나뿐인 가족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단단은 더 이상 자기만 아는 고집스런 발레리나가 아니다. 제 손으로 무너뜨린 게 아니라 해도, 무너지는 가족 앞에 방관자로 서 있던 자신을 깨달은 지친 여공일 뿐이다. 단단이 옌시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 기꺼이 옌시를 도와 가족의 재결합에 마음을 쏟는 장면, 옌시의 도움으로 간신히 완위에게 돌아가는 장면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온전히 재편입될 수 없는 세 사람이 수년 후에도 매달 5이면 돌아오지 않는 옌시를, 돌아오지 않을 기억을,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마중하기 위해 함께 기차역을 찾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깊은 울림을 더해 준다. 가족은 아닌 채로, 그러나 여전히 익숙하게 함께 살아가는 이 ‘타협된 만족’에서 체념과 자기세뇌를 수단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중국인민의 그림자를 발견했다면 비약일까.

귀래歸來 2. 장이머우의 귀환
<영웅>(2002) 이후 장이머우의 영화를 볼 때면 ‘훌륭한 감독이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지, 훌륭한 영화가 훌륭한 감독이라는 칭호를 만드는지’ 고민하곤 했다. <붉은 수수밭紅高梁>(1988)이나 <홍등大紅燈籠高高掛>(1991), <인생> 같은 그의 초기작에 매료된 마음으로 최근작들을 볼 수는 없었기 때문 이다. 그러나 <귀래>는 그렇듯 의식적으로 날을 세웠던 불신의 시선을 부끄럽도록 한 수작이었다. 글을 쓰며 돌이켜 생각하건대, 그건 아마 영화적 요소요소의 ‘조화됨’에서 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에게 문화영웅의 칭호를 붙여 주었다 다시 오리엔탈리즘의 장사꾼이라는 오명을 안겨 준 탐미적 미장센이나 색채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장이머우를 작가 대신 기술자처럼 보이게 했던 종전의 몇 작품과는 달리 <귀래>에서는 잔잔한 서사와 함께 모난데 없는 조화를 이루었고, 눈에 띄게 대사가 줄어든 공간은 자오샤오딩(조소정) 의 꽉 짜인 카메라워크와 첸치강의 음악으로 농밀하게 채워졌다. 서사와 그림과 음악이 이루는 삼각형의 정점에 장이머우가 서 있음은 말할 것도 없음이다. <귀래>로 장이머우 영화에 대한 시각은 또 한 번 반대 방향으로 꺾여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지만, 한 가족의 삶으로 상징되는 인민사회의 붕괴와 재건, 그리고 외상을 침잠하듯 잔잔한 터치로 그려낸 장인의 귀래는 환영, 무조건 환영이다.

길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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