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부산> 편집팀에서 기획한 내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조금 막연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부산영상위원회가 촬영지원한 영화·영상물 리스트를 검토한 후 주제를 정해 글을 써달라는 것이 그들의 기획인데, 부산영상위가 촬영지원한 작품은 900편이나 되었고 이들을 모두 보지 못한 상태에서 도표만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꽤나 조심스러운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목록들을 살펴보며 재미있었던 것은 ‘왜 부산이 영화 찍기 좋은 도시라고 불리는가?’였다. 그것은 부산영상위의 활발한 제작지원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부산이라는 매력적인 공간 즉 도시·바다·산을 둘러싸고 있는 최적의 장소 때문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그리하여 이 기획의 처음은 900편의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고 있는 장소인 ‘부산 남포동 일대’에 주목하고 있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2014)을 관람한 관객들이 부산 국제시장 ‘꽃분이네’로 관광을 오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장소를 이동한 이후, 남포동이 활기를 띠고 있다는 소식은 무척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영화의 서사를 들여다보면서 천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고, 부산에 영화관광지가 하나 더 생겼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영화 <국제시장>의 서사의 이유도 있지만 부산 장소를 재현하는 방식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흥행에 성공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은 대부분 영도, 자갈치시장, 광복동, 남포동, 초량, 국제시장 등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이 공간은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주요촬영지로 선택되었다.
 

2001년 부산영상위원회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부산스러운 공간’ 1위로 자갈치시장과 남포동 부근이 선택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남포동 일대가 옛 기억과 추억이 보존된 건물과 골목들로 넘쳐나고, ‘자갈치 아지매’로 속칭되는 부산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포동 일대야말로 부산의 역사를 가장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무정형적이고 무계획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부산영상위가 제작지원한 900편의 영화·영상물에서도 이 공간이 재현·소비되고 있는 것이리라. 1)
 

1) 부산영상위원회가 촬영지원한 영화·영상물 900편 중에서 남포동 일대가 촬영장소로 주로 등장하는 것은 대체로 2008년도 이전까지이며, 현재는 남포동 일대를 포함해서 부산 전역으로 확장되어 있음을 밝힌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촬영지원한 영화·영상물 현황’2)을 통해 부산 남포동 일대에서 촬영한 대표적 영화들을 살펴보면 <엽기적인 그녀>(2001, 부평동 골목, 해운대 등), <친구>(2001, 수정산 고가로, 영도대교, 자갈치, 국제시장 등), <라이터를 켜라>(2002, 부산역), <밀애>(2002, 광복동 등),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 부산 전역), <국화꽃 향기>(2003, 보수동 책방골목 등),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 영도대교, 남부민동 등), <범죄의 재구성>(2004, 연산동, 부민동 등), <태풍>(2005, 부산 전역),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 광복동, 수정동 산복도로 등), <예의 없는 것들>
(2006, 남포동, 민주공원 등), <1번가의 기적>(2007, 물만골 등), <히어로>(2007,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등), <마더>(2009, 문현동 등), <바람>(2009, 서면, 영도, 자갈치, 범일동 등), <황해>(2010, 감천항, 괴정, 동대신동 등), <투혼>(2011, 남포동, 구덕운동장),<범죄와의 전쟁>(수정동, 산복도로, 부산항, 중앙동 등), <도둑들> (2012, 부산데파트, 구 서라벌호텔부지, 연안여객터미널 등), <깡철이>(2013, 영도 산복도로, 청학동 등) 등 작품을 모두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특히 2000년부터 2008년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60% 이상이 부민동, 부평동, 수정동, 남포동, 보수동, 영도, 자갈치, 국제시장 등(편의상 이 지역에서 촬영된 영화를 ‘남포동 일대’라고 하겠다)에서 촬영을 했다. 이때 부산은 촬영장소로만 이용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존의 영화들이 어느 지역에서 촬영을 해도 주요내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에 비해 앞서 언급한 영화들은 촬영지가 꼭 ‘부산’이어야만 한다. 부산의 공간성이 나타나야하며 부산이라는 정서가 각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아예 영화제목을 통해 부산을 호명하기도 한다. 신인감독 손승웅의 <영도>(극중 인물 이름과 동네명이 동일한 이중적인 표기), 전수일 감독의 <영도다리>(2010)는 지명을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 박지원 감독의 <부산>(2009),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2009), <국제시장>도 이 같은 제목을 붙임으로써 부산의 지역성을 강조한다.
 

2008년 이후부터 남포동 일대에서의 촬영은 서서히 해운대로 이동하고 있는 형편이지만(남포동 일대에서의 촬영은 여전히 진행 중이나 그 편수가 줄어듦. 또한 촬영장소는 해운대 포함 부산의 전역으로 확장되고 있음) 부산의 정서와 관련된 영화들, <범죄와의 전쟁>, <변호인>(2013), <국제시장> 등의 영화들이 남포동 일대에서 촬영되었음을 본다면 여전히 영화감독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소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이 공간을 주요배경지로 하는 영화들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카메라가 이 일대를 비출 때 이곳은 해운대나 서면보다 덜 발달된 곳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이 공간은 어린 시절의 추억(애환의 공간)이 담긴 동네(<친구><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국제시장> 등)가 된다. 둘째, 무언가 음산하고 범죄가 일어날 수 있는 동네(<사생결단>(2006), <히어로><범죄와의 전쟁> 등)로 그려진다. 이는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가 부산사람들의 삶을 단순화시켜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사랑이다. 사랑은 연인들과의 사랑이라기보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을 뜻하는 것인데, 속으로는 뜨거운 정(사랑, 우정)이 흐르면서도 겉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무뚝뚝한 모습이 그것이다. 이런 모습은 경상도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들의 서툰 표현이 옛 공간 남포동(국제시장 등)에서 재현되는 순간 관객들은 큰 감동을 느낀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연인을 위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정이 넘치는 부산사람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2) 우선 부산영상위가 촬영지원한 영화 중에서도 ①올로케를 중심으로 한 영화들 ②부산의 정서가 담긴 영화들을 검토하는데 그 목적을 두겠다.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영화에 나타나는 남포동 일대는 발달이 덜 된 도시로 재현된다. 과하게 말해, 이는 영화라는 시각 이미지를 통해서 전근대적인 서사를 불러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제시장>을 통해 야기된 논란 또한 동일하다. 2015년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아버지 세대(영화 속 ‘덕수’)의 성실과 노력을 요하는 서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영화에 감동을 받으며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우리의 부모를 떠올린다. 아마도 이것은 ‘국제시장’이 가진 역사(광복과 더불어 귀환동포들이 생활근거지로 모여들어 터를 잡고 노점을 차림으로써 시장이 형성)와 더불어 서민들의 일상이 묻어난 공간을 통해 서사가 시작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영화도 있지만 이들 영화 속에 나타난 부산은 다양성은 무시된 채 부산을 한 가지의 ‘공통적’인 모습으로 묶어 내고 있다. 그로 인해 부산은 강렬한 지역색깔을 내포한 주변부 지역으로 전락하며, 관객들은 부산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기억하게 된다. 아련한 고향의 이미지, 폭력의 도시, 부산남성이라는 고정된 그것 말이다.
 

이처럼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는 부산공간을 재현할 때 고정된 이미지로 비추고, 서사 또한 대부분 자극적인 경우가 많음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친구><범죄와의 전쟁><변호인><국제시장> 등이 대부분 남포동 일대를 주요공간으로 선택해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부산의 장소가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한들 관객들은 고정된 서사와 이미지에 식상함을 느낄 날이 올 것이다. 익숙한 서사를 버리고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부산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야말로 부산에서 촬영한 영화가 소비되지 않고, 새로운 영화를 생성할 수 있는 길이다.
 

또한 많은 영화들이 부산 특히 남포동 일대를 촬영지로 선택한다고 해서 부산 영화를 낙관적으로 의미화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한국영화제작사는 여전히 서울과 경기지역에 90% 이상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독들은 부산이라는 장소가 최상의 조건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영화홍보 및 상영조건 등의 이유를 들어 서울 제작사와 일을 할 수밖에 없음을 피력한다. 허나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고 가는 시간이나 인건비 문제 등이 맞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들은 기반을 서울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영화 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부산 로케이션 또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이는 부산에서 촬영하는 영화가 철수된다는 뜻 이전에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영화, 부산이 영화의 도시임을 자랑하는 그 의미조차 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공공기관이 해운대로 이전해왔고, 한국영화아카데미와 종합영화촬영소도 이전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 관련 산업 문제가 해결되고 기존의 부산영상위원회가 가진 인프라와 결합한다면 부산공간을 다룰 때 있어 지금보다 다양한 면모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며 글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