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는 한국 관광의 매력을 확산시키고 한류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2018 한국 로케이션 촬영 유치 설명회(2018 Filming in Korea)를 개최했다. 필리핀 주요 영화·드라마 업계 종사자와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국 영화·드라마 산업 및 로케이션지를 소개했고 현지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곳을 부산영상위원회가 다녀왔다. 여기서 만나고 느낀 필리핀 영화·방송계의 한류 열풍을 소개한다.
 

필리핀 내에서 한류는 방송·드라마와 음악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필리핀 국민들에게 한국의 콘텐츠는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세계 13위
인구수와 평균 연령 23세라는 젊은 소비층의 필리핀은 특히 문화 콘텐츠 시장 내에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주로 소비되고 있는 한류 콘텐츠를 꼽자면 한국 드라마를 들 수 있는데, 2005년 현지 방영된 <대장금Jewel in the Palace>을 시작으로 <내 이름은 김삼순My Name Is Sam Soon><꽃보다 남자Boys over Flowers>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필리핀의 주요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한국 드라마를 수입했다. 현재는 필리핀 최대 방송사인 ABS-CBN과 GMA에서 대부분의 한국 드라마를 수입하여 방영하고 있다. 작년 GMA에서는 필리핀 여자 주인공이 한류스타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한국-필리핀 합작 드라마 <마이 코리안 자기야My Korean Jagiya>를 제작하여 최고 시청률 12.6%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에 따른 효과로 드라마의 주요 로케이션지인 춘천 남이섬과 서울 남산타워 등지에는 필리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이런 K-drama의 열기가 최근 K-cinema로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마닐라, 다바오, 세부 등 6개의 도시에선 한국영화제가 열리고, 영화 <부산행> 개봉 이후로는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한다. 2016년 개봉작 <부산행>은 아시아권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특히 필리핀에서는 역대 수입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필리핀 극장은 흥행이 안되면 금방이라도 영화를 내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품의 최소 상영 일수가 보장되지 않는 반면 인기가 있는 영화의 경우 당일 상영 횟수를 늘리기 위해 영화의 러닝타임을 임의로 줄여 상영하기도 한다. <부산행>
은 개봉 첫날부터 매진 사태가 일어났을 정도로 필리핀 국민들에게 최고의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필리핀에서 “I am from Busan.”이라고 말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Train to Busan?”이라고 물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 <부산행>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필리핀 사람들은 한국 영화·드라마가 보여주는 스토리와 정서에 공감하고 감동한다. 장르로 따지자면 가족, 로맨스, 코미디, 그리고 공포영화에 치우쳐 있다. <부산행>이 담고 있는 각기 다른 캐릭터들의 스토리에 공감하고 한국 좀비의 등장에 열광한 것이다. 마닐라 시내에 있는 CINEMAS 영화관에 잠시 들렀을 때는 최근 국내에서 흥행을 거둔 공포영화 <곤지암>이 인기리에 상영 중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필리핀 액션영화의 수요는 블록버스터 <어벤져스Avengers> <블랙 팬서Black Panther>(2018)의 큰 흥행에서 알 수 있듯 할리우드에 치우쳐 있다. 자체 제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데, 다소 적은 제작비도 한몫하겠지만 필리핀 제작사 측은 한국과 할리우드영화의 긴장감, 화려한 액션, 영상, 사운드, 그리고 연출력을 높이 인정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필리핀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약 5~10억 원 수준이다. ABS-CBN, GMA, VIVA Entertainment와 같은 필리핀의 메이저 제작사가 자체 메인 투자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들은 투자, 제작, 배급에서 매니지먼트까지 방송·영화계를 점령하고 있어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이어서 영화시장의 규모를 살펴보면 필리핀 전역의 스크린 수는 약 1,000~1,100개에 달하고 영화관람료는 지역별로 차이가 나며 대부분의 극장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마닐라에 있는 Star Cinema의 경우 관람료가 약 5~6천 원, IMAX관은 약 9~10천 원이고, 세부는 2D 영화관을 기준으로 약 4~5천 원에 관람이 가능하다. 필리핀 물가와 비교를 해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높은 금액임은 분명하다.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이지만 영어를 사용하며 서구 문화가 중심을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영상, 미디어 분야에서도 중화권의 영향이 강한 다른 동남아시아와 달리 다양한 측면에서 개방적이다. TV를 틀면 미국 프로그램을 비롯해 해외 프로그램이 다수 방영된다. 참고로 한국 드라마의 경우 자막이 아닌 타갈로그어 더빙으로 방영되는 게 보편적이다. 이처럼 해외 콘텐츠에 대해 거부감이 없으며 해외 드라마, 쇼프로그램 공동제작에도 적극적이다. ABS-CBN, GMA 관계자들도 국내 제작사와 손잡고 장편/독립영화를 제작하여 국내 배급까지 계획하고 있음을 밝혔다. 필리핀의 경우, 장편영화는 프리프로덕션 1~2개월, 프로덕션 2개월, 포스트프로덕션 2개월 등 총 6개월을 평균 제작 기간으로 보고 있다. 제작 기간은 짧은 편이지만 장편/독립영화의 제작 편수는 적지 않다. 그 이유를 들자면 필리핀에서 제작한 영화는 해외 진출의 빈도수가 꽤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과거, 한 해 수백만 명의 필리핀 사람들이 인근 동남아시아나 중동, 미국 등지로 이민을 갔고, 아직도 해외에 거주하는 필리핀 이민자 수는 상당하다. 이들을 위해 각 메이저 제작사에서는 주기적으로 필리핀영화를 수출하여 상영하고 있으며, 향후 배급 시장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필리핀 최대 방송사인 ABS-CBN 오디션프로그램을 통해 최고 스타의 반열에 오른 산다라박에 이어 최근에는 국민 MC, 영화배우로 각광받고 있는 라이언 방까지 한국 영화·드라마를 넘어 배우들도 현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VIVA Entertainment의 경우 영화, 음악, 아티스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는 멀티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마닐라 본사에는 한국 제작사가 입주해 있고, 필리핀 진출을 꿈꾸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되어 있다. 그들은 소속 한국 배우들과 함께 부산 로케이션 작품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힐 만큼 적극적인 한국영화시장 진출의 포부를 내비췄다.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필리핀 시장에서의 한국 콘텐츠의 성공 유무는 유럽, 남미 등지의 진출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다가오는 2019년에는 한국-필리핀 수교 70주년을 맞이하는데, 각국의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늘어나고 한-필 합작영화 시장도 활발해지길 기대해본다.